파사익 왕은 부처님과 같은 날, 사위 국 마라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경전에 따르면, 그의 어머니는 종의 출신이었던 모양이다.
그의 성품은 거칠고 사나워 전쟁을 즐겼으며,
왕위에 오르자 곧 카시 족과 코살라를 정복하여 국위를 널리 떨쳤다.
왕의 성품이 포악하다고 하는 것은 주로 석가족의 이야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직후, 아직 녹야원에 계실 때였다.
파사익 왕은 석가족의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하여 사신을 카필라 성으로 보내었다.
그는 석가족이 말을 듣지 않으면 무력으로 뜻을 관철하겠다고 위협하였다.
석가족은 그들의 여인을 파사익 왕에게 시집보내고 싶지가 않았다.
성이 난 석가족은 말하였다.
"우리는 큰 성받이다.
무엇 때문에 종의 자식과 혼인을 하겠는가."
그러나 파사익 왕이 군사를 일으켜 침략할 것을 생각하면,
파사익 왕의 뜻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석가족은 '보내야한다' ,'보낼 수 없다'고 뜻이 둘로 나뉘었다.
그때 부처님의 사촌이자 석가족의 마지막 왕이었던 마하남왕이 제안하였다.
"여러분 분노만 할 것이 아닙니다.
파사익왕의 포악한 성격으로 보아 ,
만약 그가 쳐들어온다면 이 나라는 쑥대밭이 되고 말 것입니다."
마하남은 자기 집에서 일하는 하녀 나가문다의 딸 말리를 분장하여
석가족의 처녀라고 속이고 파사익왕에게 출가시켰다.
파사익와과 말리의 사이에서 태아난 사람이 비유리 이다.
파사익 왕은 비유리 왕자를 매우 사랑하였다.
왕자가 8살이 되던 해 외가인 카필라 성으로 활쏘기를 배우러 보냈다.
마침 카필라성에서는 새로 궁전을 지어 부처님을 모시고
낙성식을 화려하게 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부처님이 오시기 전에 비유리왕자가
새로 지은 궁전에 들어가 장난을 하자,
가 난 석가족 사람들이 비유리를 노비의 소생이라 버릇이 없다고 내쫓아 버렸다.
그리고 그가 앉았던 자리의 의자를 우유와 물로 씻었다.
이때서야 자기가 석가족 노비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비유리는
울분을 참으며 코살라국으로 돌아갔다.
비유리는 동행하였던 호고에게 내가 이다음에 왕위에 오르거든
오늘의 모욕적인 일을 반드시 상기시키라고 일러두었다.
'저들이 내가 앉았던 자리를 우유와 물로 씻지만,
내가 왕이 되면 저들의 피로 이곳을 씻을것이다'
파사익왕은 석가족이 공주가 아닌 하녀를 자기의 아내감으로 보낸 사실을 알고,
석가족에 대하여 적개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이제까지 말리가 누렸던 왕비의 지위를 빼앗고,
비유리에게는 태자의 지위를 박탈하고,
두 사람을 노비신분에 어울리는 대우를 하게 되었다.
그와 같은 사건이 있은 얼마 후 파사익왕은 부처님을 만나게 되어 사정을 이야기 드렸다.
부처님께서는 파사익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석가족이 한 일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말하고자 합니다.
말리는 왕적의 딸이니, 그 이유는 이미 카시족의 집에서 관정식을 했기 때문이요,
비유리 역시 카시족 왕의 아들로 태어났소.
옛날부터 현자들이 '어머니의 신분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아버지의 신분이 표준'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부처님께서 파시익왕에게 나무를 줍는 비천한 여인이 왕의 아내가 되어
와라나시를 통치하는 훌륭한 아들을 낳았다는 고사를 말해주자,
파사익왕은 말리와 비유리에게 다시 옛날의 대우를 해주었다.
그러나 비유리는 언제고 이 굴욕적인 일에 앙갚음을 할 것을 벼르고 있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파사익 왕은 말라족 출신 반둘라를 군의 사령관으로 두었는데,
그가 재판관들의 부패를 바로 잡았는데
그때 파면당한 재판관들이 앙심을 품고
파사익왕에게 반둘라가 역모를 꾀한다는 모함을 하였다.
파사익 왕은 그 말을 믿고 반둘라와 그의 아들들을 몰살시켰다.
뒤에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된 파사익왕은 후회하면서
반둘라의 조카 카라야나를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카라야나는
삼촌 반둘라가 억울하게 쳐형되었다는 것을 알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였다.
파사익왕은 말리 부인과 함께 기원정사를 찾아갔다.
왕은 평소와 같이, 기원정사의 문 앞에서 수레를 내렸다.
칼은 풀어서 카라야나에게 맡기고 부처님을 뵙고 설법을 들었다.
그때 카라야나는 시녀 한 사람과 말 한마리만 남겨두고
왕의 상징물을 가지고 회군하여 비유리를 왕으로 삼았다.
파사익왕은 비유리와 카라야나에게 축출 당했다는 것을 알고
생질이자 사위인 아자따삿뚜에게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라자가하로 갔다.
그러나 이미 해가 진 뒤라 라자가하의 성문들이 굳게 닫혀 있었다.
파사익왕과 왕비는 지치고 무우를 얻어먹고 갑자기 복통이 나서 죽었다.
부왕이 죽고 왕위에 오른 비유리는 석가족에게 앙갚음을 실행에 옮겼다.
부처님께서는 비유리가 석가족을 정벌하기 위하여
출병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코살라국 병사들이 오는 길목에 있는
한 고목나무 밑에 결가부좌하고 앉아 계셨다.
이러한 모습을 본 비유리왕이 부처님께 물었다.
"세존이시여, 잎이 무성한 나무숲을 놓아두고 어찌하여 말라버린 고목 밑에 계십니까?"
"비록 일곱 그루의 무성한 나무그늘이 있다고 해도 무성함이 어찌 영원하겠습니까?
나는 가시나무 밑에 앉아도 편안하기만 합니다.
친족이 다치는 것이 가엾기 때문입니다."
'옛 부터 전하는 비결에 의하면, 한창 전쟁을 하다가도
사문을 만나면 군사를 거두어 돌아가라 했는데,
지금 부처님을 만났으니 어찌 나아갈 수 있겠는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비유리는 물러갔다.
그러나 호고가 어릴때 당한 모욕을 잊지 말라는 말을 하자
비유리는 2차, 3차로 침범하였고 그때마다 부처님께서 막아 물러갔다.
세 번째 마른 나무 아래에서 돌아오신 부처님의 얼굴과 몸에서는
광채가 사라지고 옷의 빛깔이 변하였다.
이를 본 아난은 걱정이 되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을 모신 지 여러 해가 되지만, 지금과 같은 변화는 일찍이 보지 못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지금부터 7일뒤 석가족이 멸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목건련과 아난 등이 석가족을 구하기 위해 신통력으로
비유리의 진군을 막으려 하였으나 부처님께서는 오히려 만류하셨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싸움이야 일시적으로 막을 수가 있으나
숙세의 깊이 맺혀있는 원한 관계는 신통력으로도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목건련에게 '설사 하늘을 땅으로 만들고
다시 땅이 뒤집어 하늘을 만들 수 있다고 해도
과거 생에 꽁꽁 묶인 인연이야 어찌 없앨 수 있겠느냐'고 말씀하시었다.
부처님께서 더 이상 자신의 진군을 막지 않자
비유리왕은 막강한 코살라국의 군대를 몰고 카필라성으로 침입하였다.
비유리왕은 성난 코끼리를 풀어 석가족을 밟아 죽이도록 했다.
이때 9천 9백 9십만명의 석가족을 살해하여 피로 냇물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석가족 처녀 5백 명은 죽이지 말고 코살라국으로 데려가라고 명령하였다.
그 당시 석가족의 마지막 왕이었던 마하남왕은
석가족의 비참한 최후를 차마 볼 수가 없어 비유리왕에게 간청하였다.
"내가 저 연못의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동안만이라도
석가족이 마음 놓고 피할 수 있도록 해주시오 "
비유리왕은 마하남의 그 제의가 재미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허락했다.
그리고 물속에서 나올 때 까지 석가족을 죽이지 말고 도망하게 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물속에 들어간 마하남왕이 시간이 오래 지나도 나오지 않자
이상하게 여긴 비유리왕은 병사를 시켜 물속을 살펴보도록 하였다.
마하남왕은 머리를 풀어 나무 뿌리에 묶고 나무를 꼭 껴안은 채 죽어 있었다.
보고를 받은 비유리왕은 군사를 돌려 본국으로 돌아갔다.
비유리왕은 가필라 밖 니그로다 숲에 이르렀을 때,
포로로 잡아가던 5백 명의 석가족 처녀 중에 한 사람을 욕보이려 하였다.
그녀는 '내 어찌 노비의 소생과 놀아날 수 있느냐'고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으며 완강히 거부하였다.
비유리왕 그 말을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그 자리에서 석가족 처녀 5백 명을 모두 손과 발을 잘라 죽였다.
부처님과 제자들이 카필라 성에 이르러 보니 그 참혹함이란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부처님께서는 여기 저기 버려진 시체들을 덮어주고 석가족 여인들에게 법문을 해주셨다.
" 만난 것은 반드시 헤어지는 법이다. 이 몸이 있었으므로 이러한 고통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윤회하는 몸을 받지 말아야 한다.
태어남이 있어 늙음과 병듦과 죽음이 있고
근심. 걱정. 번뇌. 망상. 고통과 괴로움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애착을 버리고 윤회를 벗어나라. 그러면 이러한 고통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죽은 석가족 여인들에게 인과법문을 하고
신통력으로 관찰하여 보니
석가족 여인들이 원망을 버리고 법안을 얻어 천상에 태어났음을 아셨다.
"일체의 모든 존재는 영원하지 못하다.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는다.
그러므로 태어남이 없으면 괴로운 죽음도 없게 된다.
이것이 최상의 즐거움이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곳은 내가 법을 설하던 곳이었으나
이제는 사람들이 없어 텅 빈 폐허가 되고 말았구나.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으리라.
비구들아 앞으로 7일 안에 비유리왕과 그를 따른 군사들은 현세에서 과보를 받을 것이다."
비유리왕은 자신과 부하들이 7일안에 과보를 받고
죽게 될 것이라는 소리를 전해 듣고는 걱정이 되었다.
그는 경비를 철저히 하고 온 나라에 경계령을 내렸다.
왕은 부처님께서 결코 빈말을 하시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근심과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아무 일 없이 6일이 지나자 석가족을 정벌하라고
계속 충동질하였던 호고가 비유리왕을 찾아와서 말했다.
"왕이여, 두려워하실 것 없습니다.
벌써 엿새가 지났어도 아무 일도 없었으니,
오늘은 기분을 달래기 위하여 아찌라와띠강으로 가서 놀이나 하지요."
비유리왕은 호고의 말대로 강가로 가서
낮 동안을 보내도 아무 일이 없게 되자 그 날 밤 강가에서 야영을 했다.
그러나 한밤중에 갑자기 폭풍이 불어 닥치고
폭우가 쏟아져 비유리왕과 군사들 대부분이 물에 빠져 죽었다.
그리고 성안의 궁전은 벼락을 맞아 불에 타버렸다.
부처님은 그들의 죽음을 보고 말하셨다.
"그들의 악행은 심하였다.
그 모두가 말과 행동의 과보이다.
그 과보로 내생에도 수명이 짧으리라."
그때 제자들이 석가족이 무슨 인연을 맺었기에
비유리왕에게 비참한 죽음을 당했느냐고 묻자. 그 인연담을 말씀하셨다.
"옛날 라자가하에 한 어촌이 있었다.
어느 해 흉년이 들어 사람들은 풀뿌리를 먹고 살았는데,
금 한 되로 쌀 한 되를 바꿀 정도로 곡식이 귀하였다.
그곳에 큰 연못이 있었는데 라자가하 사람들은 그 연못의 고기를 잡아먹었다.
거기에는 두 종류의 물고기가 있었는데 구소와 양설이었다.
그 물고기들은 '우리는 잘못이 없고,
땅에 살지도 않는데 우리를 마구 잡아먹으니
장차 우리가 복을 지으면 원수를 갚자'고 하였다.
그 때 어촌에는 여덟 살짜리 아이가 있었는데 ,
그는 고기를 잡지도 않고 죽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언덕 위에서 물고기를 잡고 죽이는 것을 보고 재미있어 하였다.
비구들이여, 그 때 어촌의 사람들이 바로 지금의 석가족이요,
구소라는 물고기는 지금의 비유라왕이였고,
양설이라는 물고기는 호고였으며,
그 때의 어린아이가 바라 나였느니라.
나는 그 때에 물고기들이 죽어 가는 것을 보고 재미있어 하였기 때문에
지금 석가족의 비참한 죽음을 보게 되었고 큰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 때가 부처님께서 78~79세 되시던 때였다.
출처 :화엄경보현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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