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웅전 뒤편에 자리하고 계시는 비로자나불 부조로 된 부처님인데 대웅전에 부처님을
모시지 않고 큰 창을 만들어 여기 계시는 부처님이 보이는 구조로 되어 있다.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굴암길에 위치한
오봉산 석굴암(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굴암길 519 (교현리) 전화 : 031-826- 3573)은
대한 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 봉선사의 말사이다.
석굴암은 오봉산 관음봉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서울 근교의 숨겨진 보석과 같은 자연 경관을 자랑한다.
폐허가 된 석굴암을 동암선사께서 안타깝게 여겼다.
동암선사는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중 한 분으로 참여하신
백용성 큰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출가하셔서 독립은동을 하신 분이시다
스님은 제자 초안 스님에게 석굴암 중창불사를 당부했고,
초안 스님은 은사의 뜻을 받들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은 초안 큰스님을 이어
도일 스님께서 중창불사의 원력을 실현하는데 힘쓰시며
동암, 초안 큰스님들의 뜻을 계승하고 계신다.
도일 스님은 중창불사를 원만하게 진행하기 위해 3차례에 걸쳐 1000일 기도를 올렸다.
일체 바깥출입을 금하고 3000일을 기도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부처님 제자로 큰스님들의 유지를 계승하는 것이 도리라고 확신한
도일 스님은 한시도 쉬지 않고 불사에 매진해오셨다.
한국전쟁 당시 폐허 였던 시절을 떠올리면 비교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작불사를 진행되어 차근차근 사격의 면모가 갖추어지고 있다.
석굴암은 그동안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1968년 북한의 지령을 받은 무장간첩 김신조 일당이 석굴암 인근의
우이령길을 통해 서울에 잠입했기 때문에 40여 년간 출입이 통제되었다.
군부대의 허가를 받지 않고는 드나드는 일이 불가능했다.
다행히도 수년 전에 우이령길이 탐방로로 개방되면서
불자들도 예전보다는 수월하게 석굴암을 참배하게 되었다.
40여 년간 출입이 어렵다 보니 자연환경은 비교적 잘 보존되었다.
그 때문인지 우이령을 통해
북한산과 도봉산을 찾는 등산객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천년사찰의 사격(寺格)에 걸맞는 도량으로 장엄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도일 스님은
“오랜 역사를 지닌 사찰로 불자들이 편안하게 수행하고 정진할 수 있는
기도도량을 만드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면서
“불자가 아닌 일반 시민들도 언제든지 찾아와
세속에서 찌든 마음의 번뇌를 씻고 힐링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석굴암은 매년 음악회를 개최하며 불교의 가르침이
현실세계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석굴암에서 개최하는 단풍음악제는 지난해 8회를 맞이했는데
다채로운 공연으로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할 수 있다.
단순히 공연만 하는데 그치지 않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자비의 쌀을 나누고
학생들에게는 장학금을 전달하는 등 자비(慈悲)를 실천하고 있다.
도일 스님은 “중창불사는 물론 음악회와 이웃을 위한 자비행이
주지 혼자의 힘으로 할 수는 없는 일”이라면서
“조길수 신도회장님을 비롯한 관음회, 청년회 등 석굴암 모든 신도들이 합심하여
함께 해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공을 신도들에게 돌렸다.
조계종 제25교구 본사 봉선사의 문화국장을 역임한 도일 스님은 중창불사와 기도 정진,
이웃을 위한 자비행을 하는 틈틈이 붓을 들어 선서화(仙書畵)를 그리고 있다.
세속을 여윈 출가 수행자로서 정진한 결과를 화폭에 담는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선서화를 쓰는 것을 수행의 방편으로 삼았지만,
주변의 강한 권유를 뿌리치지 못한 스님은 산문(山門)을 나서 몇 차례 전시회를 개최했다.
1993년 해인사 구광루에서 합천 군부대 내 호국법계사 법당 건립기금전을 열었으며,
그 이듬해는 경인미술관에서 산사와 스님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열었고,
2006년에는 조선일보사에서 선묵전과 우림화랑에서 각각 초대전을 가졌다.
많은 관람객들의 호응과 박수 속에 성황리에 마무리가 됐다.
특색 있는 서화(書畵) 전시해
평론가들은
도일 스님 선서화가 지닌 특징을 꼽을 때 ‘용(龍)’자를 비유하여 평하는 이들이 많다.
글씨가 물이 흐르는듯 자연스러우면서도 힘이 넘친다는 것이다.
특히 ‘용’ 글씨는 마치 살아있는 용처럼 힘차게 움직이는데,
특히 꼬리에서 강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입을 모은다.
스님의 작품 전시회에는 원로 작가들도 찾아와 격려와 평가를 해 주었다.
“어찌하여 다른 사람들이 흉내 내지 못하는 작품을 만드셨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혹자는 “도대체 어떤 스님이기에 전시를 하느냐”
“정말로 스님이 쓴 것이냐”고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 ‘독창적이다’, ‘깔끔하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다른 작가들에 비해 독특한 필체와 화풍이 이목을 끌었던 것 이다.
인연 따라 불교 길에 자연스럽게 발 들여
도일 스님은 서울 강남구 자곡동에서 태어나 동자승으로 출가해
누구의 손에 끌려서 스님이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후회는 전혀 없고 오직 수행에 만족한다고 강조했다.
보통 전통 사찰의 주지 소임을 맡으려면 40대는 되어야 한다.
하지만 도일 스님은 32살의 젊은 나이에 주지를 맡아 20여년 넘게
석굴암 중창불사와 아울러 수행정진하며 자비를 실천하고 있다.
강산이 두 번이나 넘게 바뀌었으니, 짧지 않은 세월이다.
스님은 수행자의 삶이 금생에서 자신의 인연이라고 생각하며 석굴암의 수려한 경관을 유지하고,
나아가 지역 사회의 발전을 위해 힘쓰는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를 실현하려고 하고 있다.
사찰 활동외에는 차를 마시거나 밭일을 하는 등 지극히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오봉도일 스님은 앞으로도 확고한 원력 아래 불자는 물론 주민들과 함께
석굴암이 기도도량이자 명승지로 더욱 아름다운 모습을 갖춰 나가길 기대한다.
오봉산 석굴암 주지 도일스님
석굴암 나한전 수미단 중앙에 봉안된 석조나한상은 조선 후기에 조성된 석조 나한상으로
2011년 3월 8일 경기도의 문화재자료 제162-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나한상은 현재 삼성각에 봉안된 지장보살상과 같이 1873년에 제작되었다.
양어깨에는 가사(袈裟)가 둘려져 있고, 대의 안에는 복견의(覆肩衣: 승가사)를 입고 있다.
대의 깃 안쪽에는 수평 형태의 묶음띠가 가슴까지 올라와 있는 내의가 단정해 보인다.
얼굴과 손발은 호분(胡粉)으로 칠해져 있고,대의는 옻칠이 두껍게 되어 있다.
어깨는 빈약하고 어깨에 비해 머리가 큰 편이며, 무릎 높이가 상체에 비해 높은 편이다.
뒷면은 왼쪽 어깨에 전면에서 넘어온 대의 자락이 길게 덮여 있다.
불상 바닥 면에 복장구가 마련되어 있다.
양주 석굴암 석조 나한상은 사적기를 통해 제작연대와 작가를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전국 사찰에 산재한 석조불상 가운데 19세기 후반에 불화승이 제작한 기년명 불상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며,조선 시대 불교 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나한전의 이 탱화는 탑과 창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금강역사로 보기보다는 사천왕 중 서방 광목천왕으로 보인다.
삼성각
삼성각 오르는 길은 돌계단으로 이어진다. 전각 앞에는 삼층석탑이 조성되어 있다.
삼성각에는 칠성, 산신, 독성을 봉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석굴암의 삼성각에는 지장보살상이 중앙에 봉안되어 있고
산신탱과 칠성탱은 보이는데 독성탱은 보이지 않는다.
지장보살상 뒤 탱화는 약사여래 탱으로 보인다.
1985년에 조성된 산신탱과 칠성탱과 함께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석조지장보살좌상
양주 석굴암 삼성각에 봉안된 석조지장보살좌상은 조선 시대의 석불이다.
2011년 3월 8일경기도의 문화재자료 제162호로 지정되었다.
양주 석굴암 삼성각에 봉안된 이 석조지장보살좌상은
佛石(慶州石)이라 부르는 활석을 쪼아 만든 것으로,
머리 위에 두건을 두른 피건형으로 양어깨에 두건 자락이 늘어져 있다.
이 지장보살좌상은 『봉선사본말사지』에 1873년 戊子生 李氏 進明行이 발원하여
한봉창엽과 금곡영환이 나한상과 같이 제작하였다고 한다.
이 불상을 만든 한봉창엽과 금곡영환은 19세기 경기도를 중심으로 활동한 대표적인 불화승이다.
조선 후기 불교 조각사의 흐름을 살펴보면,18세기 중반부터 불화승에 의하여
불화의 제작과 더불어 불상 제작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오봉산 석굴암(石窟庵)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 1번지
오봉산 자락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오봉산은 도봉산 5봉을 일컫는 것으로 5봉으로 본다면 관음봉 아래 중턱에 해당한다.
오봉을 오르는 길은 여러 코스가 있지만,
양주시 쪽에서는 우이령(牛耳嶺) 고갯길을 많이 이용하게 된다.
우이령 고갯길은 서울특별시 강북구 우이동과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 사이에 있는 고갯길로
1969년에 일어난 1·21 사태로 인해 폐쇄되었던 것을
2009년 7월 10일에 탐방객 수를 제한하는 조건으로 개방되면서부터
세인(世人)들에게 회자하기 시작하였고
우이령 탐방길 개방과 더불어 알려지게 된 사찰이 오봉산 석굴암이다.
특히 오봉산 석굴암은 석굴 법당 나한전이 백미로 꼽힌다.
오봉산 석굴암의 동굴법당인 나한전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우리나라는 중국과 달리 석굴 법당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산은 주로 석질이 단단한 화강암이기 때문에
석굴을 조성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우리나라 대표적인 동굴법당으로는
@경주 불국사 석굴암(국보 제24호)
@군위 삼존석굴(국보 제109호)을 꼽지만,
그 외 @경주 함월산 골굴사 관음전 @소요산 자재암 나한전
@밀양 여여정사 약사전 @의령 일붕사 대웅전 석굴
@울산 송운사 미타석굴 @양산 천태사 천수천안관음굴
@밀양 용두산 천경사 대웅전 등을 꼽을 수 있다.
우이령 탐방지원센터는 두 곳이 있는데 차로 사찰까지 갈 수 있지만,
이 경우는 교현탐방지원센터를 이용해야 한다.
사전 예약은 인터넷을 필수로, 65세 이상은 전화로도 가능하다.
대한 불교 조계종 오봉산 석굴암 전화 031) 826-3573
주소: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 1번지
1)교현탐방지원센터 : 031-855-6559
2)우이탐방지원센터 : 02-998-8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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