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무소유 정신으로 잘 알려진 법정 스님이 손수 짓고,
17년간 수행한 불일암이다.
세 칸짜리 열네 평 작은 본채와 옛 암자의 자재를 재활용한 하사당,
재래식 해우소까지 법정 스님이 살던 그 모습 그대로다.
작고 불편하기 그지없는 이 집에서 법정 스님은 무얼 깨달았을까.
법정 스님이 나이 쉰둘에 처음 들인 제자, 덕조 스님.
“딱 10년만 살아 보라”던 스승의 유지에 따라,
덕조 스님은 불일암에서 홀로 수행 중이다.
스승은 왜 그런 유지를 남겼을까.
“꿈이 많고, 혀가 있는 사람은 살 수 없다” 적혀 있는
법정 스님 육필 상량문.
세상에 처음 공개되는 그 글에서 스승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무소유의 집, 불일암으로 가보자.
“법정 스님께서 가장 듣기 싫어하는 칭호가 ‘작가’였다.”
10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에서 덕조 스님을 만났다.
그는 법정 스님의 맏상좌다.
절집의 맏아들이다.
생전에 법정 스님은 엄한 성격이었다.
특히 남들보다 자신에게 무척 엄격했다.
많은 행자가 법정 스님의 상좌가 되고자 했지만 받아주지 않았다.
젊은 시절 법정 스님에게는 세 가지 철칙이 있었다.
첫째 주지 안하는 것,
둘째 상좌를 두지 않는 것,
셋째 유교식으로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두루마기를 입지 않는 것.
평소 “출가 수행자는 단출하게 입어야지”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런 철칙을 깨고 처음으로 받은 상좌가 덕조 스님이었다.
행자 시절, 송광사와 불일암을 뛰어다니며
우편물 배달과 심부름하던 그를 법정 스님이 좋게 본 것이다.
법정 스님이 해인사에 살던 젊은 시절 얻은 별명이 ‘억새풀’이었다.
억새풀은 살짝 스치기만 해도 살이 베인다.
수행하며 시퍼렇게 사는 법정 스님에게 도반들이 붙인 별명이다.
행자 생활이 끝날 무렵,
법정 스님은 그에게 법명을 지어주며 상좌로 받아들였다.
법정 스님은 “네가 보다시피 나는 까탈스럽고,
항상 덕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덕 있는 노스님을 모시며 살고 싶었다.
그러니 내가 덕 있는 할아버지를 대한다는 마음으로,
네 이름을 ‘덕조(德祖)’라고 지었다”고 했다.
뜻밖의 승낙에 기뻤던 덕조 스님은 송광사로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런데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그만큼 법정의 상좌 수락은 당시에 파격이었다.
덕조 스님은 “법정 스님의 깔끔한 성품이
책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며 불교의 요체가 깔끔하게 담겨있다고 했다.
법정 스님의 목소리가 많은 사람에게 닿았으면 했다.
35년 만에 살아난 법정 스님의 책
『진리와 자유의 길』 뒤표지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자신이 부처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말라.
자신이 부처라는 사실을 확인하길 바란다.
부처는 대자유인이다.
부처는 나 자신이고, 나 자신이 부처답게 사는 것이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법정 스님이 건네는 소낙비다.
우리의 마음을 적시는 법비 한 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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