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

사리불의 유골을 들고

월광화 2022. 9. 21. 15:22

 

 

두 사람이 똑같은 행동을 하면 몇몇이 웅성거리며 주목하기 시작하고,

세 사람이 똑같은 행동을 하면 주변 사람들도 걸음을 멈추고,

그들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세 사람 이상이 되었을 때,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행동변화속도는

바이러스의 전파만큼이나 급속하게 진행된다.

 

그래서 집단이 필요하다.

똑같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그의 사상’은 비로소

세상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2,500여 년의 장구한 세월을 건너

인류의 삶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부처님의 사상이 탁월했던 까닭도 있겠지만

그분의 사상을 함께 공유하고 함께 행동한 집단,

즉 불교교단佛敎敎團이 있었기 때문이다. 

 

불교교단의 교주는 물론 부처님이시다.

하지만 교단의 형성에 있어서만큼

사리불舍利弗의 공로를 빼놓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을 규합하고,

체계적으로 교육시키고,

집단을 원활하게 통솔하고,

구성원들의 결속력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사상의 주창 외에 또 다른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부분에서 가장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던 인물이 사리불이다.  

 

사리불은 부처님에게 있어 최고의 조력자이자 대리인이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신 다음 해에 왕사성에서

부처님을 만난 이후로 새롭게 출가한

수많은 비구들을 교육시켰던 사람도 사리불이고,

 

사위성의 비구들이 패를 나눠 서로 다투는 모습에 신물이 나

부처님이 홀로 사라졌을 때 흩어진 비구들을 규합하여

상캇사로 부처님을 마중 나갔던 사람도 사리불이고,

 

수많은 이교도들의 비난과 공격에 맞서 치밀한 이론과

유려한 언변으로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했던 사람도 사리불이고,

 

부처님 말년에 아사세왕의 후원을 등에 업은 제바달다가

교단을 분열시켰을 때에 그들의 소굴로 찾아가

250명의 비구를 다시 데려온 사람도 사리불이었다.

 

사리불이 없었다면,

혹 부처님의 가르침은 장구한 역사의 물결에 휩쓸려

‘몇몇 이야기’나 ‘한때의 이야기’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런 소중한 제자가 당신보다 먼저 죽음을 맞이했을 때,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

 

『증일아함경』과 『현우경』 등에 수록된 내용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부처님께서 여든의 나이를 바라보실 무렵이었다. 
비사리성의 망고 열매 동산에 머무시던

부처님께서 어느 날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나는 3개월 후에 반열반般涅槃에 들것이다.”

소식을 듣고 몰려와 통곡하며 울부짖는 제자들에게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모든 것이 무상하다.

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나는 그대들에게 해야 할 일들을 이미 다 했고,

해야 할 말들도 이미 다 했다.

그러니 그대들은 그저 힘써 수행하기만 하면 된다.

슬퍼하지 말라.

그 슬픔이 그대들의 수행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스승의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직감한 사리불은 부처님께 찾아가 아뢰었다. 

 

“저는 부처님께서 반열반에 드시는 것을 차마 제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부디 제가 먼저 반열반에 들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부처님은 조용히 침묵을 지키셨다.

사리불의 간청은 거듭되자 부처님의 말씀이 한숨처럼 흘러나왔다. 

“때가 되었다는 걸 알아야 하겠지.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성인마저도.”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이마를 조아린 사리불은

두 손으로 부처님의 두 발을 붙잡고 자신의 정수리 위로 높이 받들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고서 합장한 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제가 세존을 뵙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이겠군요.”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자신의 처소로 돌아온 사리불은 발우와 가사를 챙기고 곧바로 길을 나섰다.

그와의 이별을 직감한 비구들이 무리 지어 뒤를 따랐다.

 

사리불이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섰다. 

“이제 여러분이 가야 할 곳으로 가십시오.

그곳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세상 사람들을 교화하고,

청정한 행동을 잘 익혀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십시오.

제게는 사미沙彌가 있습니다.

이제 이 사미가 나에게 공양할 것입니다.”

 

어린 사미 균두均頭만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온 사리불은 고향 집,

자신이 태어난 방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사미 균두는 화장한 스승의 유골을 스승의 발우에 담고,

스승이 입던 가사를 들고서 부처님을 찾아갔다.

 

그 무렵 부처님께서는 왕사성 죽림정사에 머물고 계셨다. 

사리불의 열반 소식을 전한 아난은 끝내 오열하고 말았다.

 

그런 아난을 다독이며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쳐라, 이제 그만 그쳐라. 아난아. 슬퍼하지 마라.

태어나면 반드시 죽음이 있기 마련이다.

심지에 기름이 떨어지면 등불이 꺼지듯이….”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의 유골이 담긴 발우를 손에 들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사리불의 사리이다.

사리불은 가장 지혜로웠으며,

여래와 더불어 조금도 모자람 없이 법을 설하면서 여러분을 이끌었다.

 

그는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을 알았으며,

한가하고 고요하게 지내는 것을 좋아하였으며,

용맹스러운 뜻이 있고 하는 일이 어지럽지 않았으며,

겁내거나 나약한 마음이 없고 모든 일에 인내하였으며,

 

성품이 부드러워 다투기를 좋아하지 않고 항상 선정을 닦아 해탈을 얻었다.

그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행복이 충만하였다. 

 

보라. 이것이 내 아들의 고귀한 주검이다.

그를 잃은 나는 이제 큰 가지가 부러진 나무와 같구나.” 

 

얼마 후 왕사성을 떠난 부처님께서 나라타那羅陀 마을에 머무실 때였다.

그 무렵 사리불과 더불어

교단의 두 기둥과 같았던 목건련目揵連마저 열반에 들었다. 

 

그리고 어느 날,

부처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수많은 비구들이 모인 자리에서였다. 


한참을 말없이 물끄러미 비구들을 바라보던 부처님께서 입을 떼셨다. 

“사리불과 목건련이 없으니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도 왠지 자리가 텅 빈 것만 같구나.

 

사리불과 목건련이 다른 곳을 유행 중이라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었다면

아마 이처럼 쓸쓸하지는 않았으리라.” 

 

고국의 멸망과 당신의 죽음 앞에서도 초연했던 부처님이다.

부처님은 그런 분이셨다.

그분의 삶에서 쓸쓸함과 아쉬움,

소위 우리가 인간적인 면모라 부르는 감정들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사리불의 주검 앞에서는 그분도 슬픔의 강물에 발이 젖고 말았다.

그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어느 정도였는지 가히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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