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평책의 뜻 조선 말기, 영조와 정조가 당쟁(黨爭)의 폐해(弊害)를 없애기 위해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여 당파 간의 정치 세력에 균형을 꾀하던 정책. 영조 좀 마른 스타일로 신경질적인 이미지가 있다. 영조는 평생을 음식을 가려 먹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만큼 자기관리가 철저했다는 반증이다. 영조는 콤플렉스가 매우 심한 사람이었다. 조선은 철저한 신분사회였다. 그 신분이라는 것은 부계사회이므로 아버지에 따라 운명이 결정될 것 같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다. 농경사회여서일까? 씨보다 밭을 중요하게 여겼다. 아버지의 신분이 높더라도 어머니의 신분에 따라, 양가 출신의 첩의 자식은 ‘서얼’, 종이나 천민을 어머니로 두었으면, 본인도 종이나 천민의 신분을 받게 되는 것이 조선의 법이였다. 천한 무수리 출신인 어머니의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