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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대제 - 후계자

월광화 2022. 8. 6. 09:43

서재에 앉아 있는 40대의 강희제
만주족의 전통적인 관모와 예복을 입고 있고

책장에 둘러싸인 채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는 청나라라는 정복왕조에 대한
한족 학자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강희는 35명의 아들과 20명의 딸을 두었는데,
만년晩年에는 정치적 폐단이 늘어나고
아들끼리 붕당을 결성해 후계 자리를 다투면서 정국이 날로 복잡해져갔다.

 

장황자 직친왕直親王 윤제胤禔
1672~1734. 강희제의 권신 명주明珠와 혈족인

혜비惠妃 납란納蘭씨 소생.
윤잉이 황태자에서 폐위된 직후 태자를 꿈꾸다
패자貝子로 작위가 격하된 후 쓸쓸한 최후를 맞는다.

 

 

2황자 황태자皇太子 윤잉胤礽
1674~1725. 효성인황후孝誠仁皇后 혁사리赫舍里씨 소생.

황태자에서 폐위된 후 황실 대동보에서 제명되었다.

사후에 이친왕理親王에 봉해졌다.

 

 

 

3황자 성친왕誠親王 윤지胤祉
1677~1732. 영비榮妃 마가馬佳씨 소생.

옹정 연간에 군왕으로 작위가 격하되었다가 죽은 후에 복권되었다.

 

 

4황자 옹친왕雍親王 윤진胤禛
1678~1735. 생모는 덕비德妃

오아烏雅씨(옹정제 즉위 후 효공인황후로 추존)다.

청나라 제5대 황제 세종世宗 옹정헌황제雍正憲皇帝.

 

 

 

8황자 염친왕廉親王 윤사胤禩
1681~1726. 양비良妃 위衛씨 소생.

옹정 연간에 폐서인됨. 황실 대동보에서 제명

 

 

 

9황자 혁군왕奕郡王 윤당胤禟
1683~1726. 의비宜妃 곽락라郭絡羅씨 소생.
옹정 연간에 폐서인됨. 황실 대동보에서 제명.

 

 

10황자 돈군왕敦郡王 윤아胤䄉
1683~1731. 온희귀비溫喜貴妃

유호록鈕祜錄씨(효소인황후로 추존됨) 소생으로,

옹정 연간에 폐서인됨. 황실 대동보에서 제명.

 

 

13황자 이친왕怡親王 윤상胤祥
1686~1730. 경민황귀비敬敏皇貴妃 장가章佳씨 소생.

후일 옹정제가 되는 넷째황자 윤진과 가장 돈독한 관계였다.

 

 

14황자 순군왕恂郡王 윤제胤禵
1688~1756. 본명은 윤정胤禎. 효공인황후 오아씨 소생으로,

넷째황자 윤진과 생모가 같다.

패륵으로 작위가 격하되나 건륭 연간에 복권됨

 

 

17황자 과친왕果親王 윤례胤禮
1697~1738. 순유근비純裕勤妃 진陳씨 소생.

황권皇權 다툼에 참여하기보다는 서법書法과 시사詩詞를 즐겼다.

 

 

60세 때의 강희제
강희제는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인

61년 간의 통치를 통해 반청세력을 진압하고,

티베르와 외몽고 정벌, 네르친스크 조약 체결,

대만 복속을 통한 통일국가를 완성해

오늘의 중국 국경선을 확정했다.

그의 재위 당시 청나라는

근대 초기의 제국들 가운데 가장 크고 강력한 국가였다. 

 

 

장정옥張廷玉
안휘성安徽省 동성桐城 출신으로, 자는 형신衡臣이다.

1700년(강희 39년) 진사시험에 급제하여 한림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후 강희제에게 인정을 받아 고위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조정 대사에도 참여하며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3대를 섬겼다.

 

 

방포方苞
장정옥과 같은 안휘성 동성 사람.

강희 45년(1706) 회시會試에 급제했지만

어머니의 병환으로 전시殿試에는 응시하지 못했다.

강희 50년(1711) 대명세戴名世의《남산집》南山集에

서문을 써주었다가 필화筆禍 사건에 연좌되어

투옥된 뒤 노예의 신분으로 떨어졌다.

2년 뒤 면죄를 받아 복권된 후 

글 솜씨를 인정받아 주로 조정의 문서계文書係를 맡았다.

 

 

말년의 강희제 모습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로,

오늘날 중국의 강토를 확정지은 강희제도 죽음 앞에서는 어쩌지 못했다.

다행인 것은 후계자로 옹정제를 선정해 건륭제까지 이어지는

중국 역사상 가장 전성기인 ‘강건성세’康建盛世의 서막을 열었다는 점이다.

‘천고일제’千古一帝라는 명성은 그래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효공인황후孝恭仁皇后
호군참령護軍參領 위무威武의 딸로, 성姓은 오아烏雅이다.

옹정제의 생모로, 1681년에 덕비德妃에 봉해졌다.

옹정제 즉위 후 황태후로 존숭되었다.

 

 

옹정황제雍正皇帝
1678~1735. 재위 1722~1735. 강희제의 넷째아들로 태어나,

강희제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다.

즉위 초에 여러 형제들을 숙청하는 비정한 모습을 보였지만

내치內治에 전념하여 정치와 재정 분야에서 중대한 개혁을 이루었다.

묘호는 ‘세종’이고, ‘옹정’은 그의 연호이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자신의 모델로 삼았다고 할 정도로

집권 내내 반부패 개혁을 추진했다.

 

 

[출처] 작성자 더봄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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