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달이 든 내년(2023년), 윤년을 앞두고
지금부터 가사 불사가 활발히 이뤄져야 하지만
정작 관심 갖는 이가 많지 않은 요즘이다.
2023년 2월(음력) 윤달...남원 대복사에 얽힌 설화
스님 비방 과보 쌓였지만 부인의 바느질 공덕으로
구렁이 신세 면한 남편 죽음도 빗겨간 신묘한 힘
“훌륭하도다.
해탈복이여! 위없는 복전의로다.
내 지금 이 가사(袈裟)를 받들어 수하노니 널리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지이다.
옴 마하가바바다 숫제 사바하.” 스님들이 가사를 수하면서
두 손으로 받들고 읊는 ‘정대게(頂戴偈)’입니다.
불자라면 누구나 가사를 두른 스님들의 모습을 자주 보셨겠지만
그것이 갖는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아는 분은 많지 않을 겁니다.
1960년대 산문에 들어와
가사를 손수 지으며 바느질로 평생을 보낸 제가
이렇게 펜을 잡은 이유는 하나입니다.
바로 희미해져가는 우리의 전통 ‘가사불사’의 의미와
공덕을 더 많은 분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예로부터 사찰에서는 기도회향, 윤달, 안거 해제가 있을 때
신도들이 스님들에게 가사를 지어 올렸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가사가 불교의 탄생과 함께한 태초의 성보이기 때문입니다.
세 가지의 가사(승가리·안타회·울다라승)와 발우 하나.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정하신 최초이자 최소한의 의발(衣鉢)은
부처님 당시부터 불제자를 외도들과 구분 짓는 수행 방편이었습니다.
또 출가사문에게 가사는 초발심을 돌아보게 하는 죽비이기도 합니다.
가사는 부처님과 출가 사문이 입는 법복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전통적으로 붉은색의 홍가사를 사용했지만,
현재 조계종은 초기불교 당시와 같은
괴색(壞色)의 통일가사를 만들고 있습니다.
괴색은 청·황·적·백·흑의 다섯 가지 정색(正色)을 파괴한 색으로,
탐·진·치 삼독심을 무너뜨리고,
계·정·혜 삼학의 법향을 물들인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렇기에 출가자는 가사를 수함으로써 비로소 부처님의 제자가 됩니다.
“바느질 세 뜸만 떠도 공덕이 된다.”
제가 수십 년간 가사불사 현장에서 천을 재단하고,
바느질을 하면서 선대 스님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입니다.
정말로 바느질 몇 번에 공덕이 얼마큼 쌓인다고는 단언할 수는 없지만,
가사불사에 동참했다가 가피를 입은 이야기는
예로부터 설화로도 전해지고,
직접 경험했다는 불자들의 증언도 여러 번 들었습니다.
가사는 비록 낡고 버려진 천으로 만들기 시작했지만,
부처님의 법을 만나 성스러운 공덕의 옷이 됐습니다.
불보살님의 몸을 보호하고 거룩한 수행을 표상하며,
교화의 현장에 늘 함께하는 것이 가사입니다.
가사에는 신묘한 위신력이 담겨 있어서
중생의 근기와 인연 따라 가피가 발현됩니다.
바느질이든 다림질이든 아니면 재(財)보시를 하든,
가사불사에 동참하는 이들에게 복이 되는 이유입니다.
전라북도 남원군 남원읍 왕정리에 있는
교룡산에는 대복사(大福寺)라는 절이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 도선국사가 말년에 창건한 사찰로,
창건 초기에는 대곡암(大谷庵)이라 불렀습니다.
나중에는 교룡사로 불리다가 조선시대 대복사로
사명이 바뀌는데 그 연결고리가 바로 가사불사입니다.
19세기 조선 철종 때 이 사찰 인근에는 지방 관청에 근무하던
하급 관리 대복(大福)이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는 평소 성질이 사납고,
사냥을 즐겨 동네 사람들에게 빈축을 사기 일쑤였습니다.
반대로 그의 부인은 불교에 대한 신심이 돈독했는데,
절에 다니며 불공을 올리고 염불을 배워,
매일같이 진언을 외는 고운 심성의 소유자였습니다.
또한 스님들을 보면 친정 식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하고 대접했습니다.
그러나 남편 대복이 이따금씩 부처님과 스님을 비방하곤 했는데,
부인은 그 모습에 늘 무거운 죄를 진 것처럼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느 날,
두 부부의 집에 교룡사 화주승인 한 비구니가 찾아와
가사 한 벌을 시주할 것을 청했습니다.
“우리 절에서 스님들이 입을 가사불사를 하게 되어
동참 시주를 권하러 왔습니다.
가사 한 벌을 단독으로 시주하시거나,
혼자 하시기 힘들면,
여럿이 동참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번 상의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신심 깊은 대복의 아내는 스님에게 가사 조성 공덕을 물었습니다.
“스님, 가사라는 것은 스님들이 입으시는 의복인데,
그것을 조성하는 데 동참하면 어떠한 공덕이 있습니까?”
그의 물음에 스님은 가사가 갖는 의미와 가사불사에
시주함으로써 얻게 되는 복이 무엇인지 친절하게 설명했습니다.
그 얘기를 들은 대복의 아내는
단독으로 가사 한 벌을 시주하기로 하고,
매일 교룡사을 왕래하면서 기도를 올리고 바느질을 도왔습니다.
한편으로는 남편의 죄업을 소멸하고,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새사람이 되도록 하겠다는 서원도 세웠습니다.
이런 사정을 모른 채 신임 사또의 부임을 맞이하기 위해
며칠간 관청에서 지내던 대복.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가던 그가 신천교라는 다리를 건널 때였습니다.
“대복아! 대복아!”
어디선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주위를 살폈지만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천천히 소리를 따라 걸음을 옮기니 다리 밑에서
귀와 뿔이 달린 커다란 구렁이가 다시 소리를 질렀습니다.
“네가 대복이지?”
말을 하는 구렁이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대복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구렁이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너는 누군데 내 이름을 부르면서 나를 아는 체 하느냐?”
“나는 교룡사 아랫마을에 살던 사람인데
부처님을 싫어해 불법을 비방하고,
스님들을 욕하며,
삼보의 재물을 파괴한 죄로 죽어서 구렁이의 몸을 받고,
이 다리 밑에서 백년을 지냈다네.
그런데 네가 또 나처럼 똑같은 죄를 짓고 있으니,
너 역시 이 구렁이의 과보를 받게 될 것이기에 일러주려 불렀다네.”
그 말을 들은 대복은 벌벌 떨면서 오금을 펴지 못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구렁이의 과보를 면할 수 있겠습니까?”
“네 아내가 교룡사에 시주를 하고,
날마다 불공하며 바느질을 하고 있으니
이참에 너도 너의 죄를 참회하고 나의 명복을 빌어주시게.
그리고 많이 낡은 교룡사를 중건하는데 도움을 주면
나도 구렁이의 업보를 벗어날 것이고, 자네 역시 그럴 것이라네.”
대복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집안을 둘러봐도 부인이 보이지 않자,
마을사람들에게 행방을 물었습니다.
“자네 부인이 가사불사인가 뭔가 한다는 핑계로
매일 교룡사에 가서 중들과 놀아난다던데 그리 가보시오.”
대복은 사람들의 비아냥에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구렁이와 했던 약속은 까맣게 잊은 채
벽장에 넣어두었던 활과 화살을 들고 교룡사로 달려갔습니다.
이윽고 절 앞에서 일주문을 지나는 아내를 발견했습니다.
그때까지도 분을 참지 못한 대복은
활시위를 당겨 아내에게 화살을 쏘았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명사수라는 말을 들어온 대복의 화살은
아내에게 박히지 않고 바닥으로 툭하고 떨어졌습니다.
다시 한 번 활시위를 당긴 대복.
역시나 화살은 이번에도 명중하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대복은 구렁이의 얘기가 떠올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대복이 아내에게 달려가 부르자 “오늘이 가사불사 점안식 날이라,
시주한 사람은 꼭 모이라고 해서 가는 길”이라며
아내는 대복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법당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침 점안 불공이 끝나고 시주자의 이름을 부르며
스님들에게 가사를 올리는 의식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대복 내외의 이름이 불리고,
아내가 나가서 가사봉투를 받아 가사를 꺼내는 순간,
봉투에서 화살촉 두 개가 ‘뎅그렁’하고 떨어졌습니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대복이 다가가 가사를 펼쳐보니
왼쪽 어깨 부분에 구멍이 두 군데 나 있었습니다.
가사불사에 참여한 스님과 시주자들은 모두 아연실색하며,
무슨 부정이 끼어서 이런 일이 생긴 게 아닌지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대복의 아내도 마치 큰 죄를 지은 것처럼 가슴이 울렁거렸습니다.
그러자 모든 내막을 알고 있는 대복은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 앞에 서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사람들은 대복의 부인이 맞을 화살촉을
가사가 대신 맞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구멍이 생긴 가사를 버릴 게 아니라,
구멍을 막아 입을 수 있도록 하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그 결과,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로
일광과 월광을 의미하는 금까마귀와 옥토끼를 그려 넣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대복이는 신심을 내어 부처님께 귀의했고,
오계를 받아 독실한 불자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사재를 전부 털어,
퇴락해가던 교룡사를 중수하는 데 힘을 보탰습니다.
그래서 교룡사는 대복의 이름을 따 대복사로 고쳐 부르게 됐습니다.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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