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발’ 이치, 여기에 있다
과거세 경 외던 사미가 부처님
사미에게 음식 준 장자가 현생
아난으로 이어지는 관계 ‘흥미’
‘아난총지품(阿難摠持品)’에 이와 같이 전한다.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
어느 날 여러 비구들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현자 아난은 더없이 총명하고 한량없는 기억력을 가져서,
그로 인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모두 기억합니다.
아난 존자는 본래 어떤 행을 지었기에 그토록 수승한 공덕을 지녔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잘 명심하라.
그런 기억력은 모두 복덕으로 말미암아 얻은 것이니라.
먼 옛날 아승기겁 전에 어떤 비구가
한 사미에게 경전을 외우게 하였는데,
그 가르침이 매우 엄격하였다.
매일 과제를 주어 그 경전을 잘 외우면 기뻐하고 칭찬하였으나,
그렇지 못할 땐 사미를 몹시 심하게 꾸짖었다.
사미는 꾸지람을 듣는 횟수가 늘수록 주눅이 들고,
왜 경을 잘 외우지 못할까 늘 자책하였다.
사미는 밤낮으로 틈만 나면 경을 외우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그렇게 해야 겨우 그날의 경을 다 외울 수 있었다.
그런데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서 매일 행해야 하는 걸식이 문제였다.
나가서 밥을 빨리 얻어먹는 날이면,
그만큼 충분히 경을 외울 시간을 얻을 수 있었지만,
마땅한 시주자를 찾지 못해 걸식이 더디면
경을 외는 시간이 충분하지 못하였다.
그런 날이면 경을 외지 못해 호된 꾸지람을
받게 될 생각에 근심하고 번민하면서 울고 다녔다.
어느 날 어떤 장자가 사미가 우는 것을 보고 불러 세웠다.
‘너는 무엇이 괴로워 그리 슬피 울고 있느냐?’
사미는 경을 외워야 하는 자초지종을 알려주었다.
얘기를 다 들은 장자가 사미에게 말하였다.
‘앞으로는 매일 우리 집으로 오너라.
내가 늘 음식을 대어 주어 너의 걱정을 덜어줄 테니,
밥을 잘 챙겨 먹고 알뜰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경을 외우도록 하라.’
사미는 그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뻤다.
그 후로는 걸식을 걱정하지 않고 공부에 전념하니,
매일같이 능히 경을 다 외울 수 있었다.
그때부터 스승과 제자가 모두 기뻐하였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어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때의 그 스승이 바로 정광불(定光佛)이요,
그 사미는 이 내 몸이며,
음식을 공양한 그 장자는 지금의 저 아난이니라.
그는 과거에 그런 행을 지었기 때문에
금생에 기억력을 얻어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니라.”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고 믿어 받들어 행하였다.
이 이야기는 먼저 위대한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께서도
과거세에 경을 못 외워 걱정하고 눈물 흘렸다는 행적을 알리며
우리 범부들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한다.
그러나 여기서 보다 주목해야 할 내용은
아난이 다문제일(多聞第一)의 제자가 될 수 있었던
인과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그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이다.
과거세의 인연에서 경을 외우느라 고심했던 사미는
오히려 부처님과 연결되고,
사미에게 음식을 제공한 장자가
현생의 아난으로 이어지는 관계가 흥미롭다.
이 점은 깨달음이란 애초에 홀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수행자의 공부는 발우를 채워주는 대중의 보시에 의지하는 것이며,
시주자는 보시를 통하여 깨달음의 수행에 동참하고 그 공덕을 나눠 받는 것이다.
걸식을 불가에서 달리 ‘탁발(托鉢)’이라고 칭하는 이치가 여기에 있다.
출처 : 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