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

월광화 2024. 1. 30. 17:37

 

 

 

조선 세조 때에 그려진 석가탄생도.

 

 

1.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

2600여 년 전, 히말라야산기슭에

숫도다나 왕이 다스리는 까삘라왓투라는 작은 공화국이 있었다.

숫도다나 왕의 부인 마야 왕비는

어느 날 하얀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태몽을 꾸고 잉태를 하였다.

막달(열 달)이 되어 갈 무렵 친정집에 가서 출산하려고 준비를 마친 후

친정집으로 가던 중에 마야 부인은

룸비니 동산에서 ‘근심이 없는 나무’의 가지를 잡고서 아기를 낳았다.

아기 왕자의 이름은 싯다르타, 모든 것을 다 이룬다는 뜻이다.

아기가 탄생한 날은 음력 4월 8일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음력 4월 8일을 부처님 오신 날로 기리고 있다.

 

음력 4월 8일 탄생한 싯다르타는 왕자는

태어나자마자 일곱 발자국을 걸으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삼계개고 아당안지(三界揩苦 我黨安之)라고 외쳤다.

‘하늘 위 하늘 아래서 나 자체로 존귀하네,

온 세상이 고통이니 내가 편안케 하리라’는 뜻이다.

 

싯다르타 왕자가 일곱 발자국을 걸은 것은 육도윤회의 수레바퀴에서

크게 한발 더 나아갔다는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

또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외침은

나 하나만이 제일이라는 독불장군식의 발언이 아니라,

천하를 당당하게 걸어가는 인간 본래 모습에 대한 외침이다.

누구나 부처라는 자기 확신이요 자기 선언이기도 하다.

 

아기 왕자의 탄생을 기뻐한 숫도다나 왕은

숲에서 수행하는 현자들을 궁으로 초대하였고,

현자들이 왕자를 살펴본 뒤에 왕자에게는 두 갈래 길이 놓여 있는데,

하나의 길은 온 세상을 덕으로 다스리는 전륜성왕이 되거나,

또 하나의 길은 집을 떠나 깨달음을 이루어

세상에 빛을 비추는 부처가 될 것입니다.라고 예원을 하였다.

 

마야 왕비는 출산 후 이레 만에 세상을 떠났고

이모인 마하빠자빠띠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게 되었다.

풍요롭고 호화로운 궁중에서 안락하게 지내며

왕가의 후손으로 자라나도록 세심하게 살폈고,

매우 영특했던 왕자는 열일곱 살이 되자

왕자로서 갖춰야 할 모든 학문과 기술을 익혔으며 무술도 익혔다.

그러던 어느 날 농경제가 열렸고 수많은 사람이 떠들썩한 축제에

정신이 팔렸었는데 왕자는 사람들을 벗어나 어느 커다란 나무 그늘에

홀로 앉아 세상의 소음에서 멀리 떨어져 조용히 깊은 선정에 잠겨 들었다.

왕자를 찾아 나선 사람들은 신기한 현상을 목격하였는데

왕자에게 드리워진 나무 그늘이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숫도다나 왕은

자기도 모르게 아들인 싯다르타에게 허리를 숙여 예를 올렸다.

 

2.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가를 결심하게 된 동기

왕자는 자주 깊은 사색에 잠기자 왕은 서둘러 혼사를 추진했고,

싯다르타가 19세가 되던 해 꼴리야 국의 공주 야소다라를 왕자의 배필로 맞아들였다.

왕자는 어느 날 조용히 사색에 잠겨 있다가

홀연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는

한결같이 늙고 병들고 죽은 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그런 현상이 찾아오면 얼굴을 찡그리며 외면하고

가엾게 여기면서 바로 자신에게도 그런 현상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과연 이것이 합당할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고,

어느 날은 동문, 남문, 서문으로 나아갔다가

늙은 사람, 병든 사람, 죽은 사람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나 태어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과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마부의 말을 듣고 왕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에게도 그와 같은 괴로운 일이 찾아오리라는 것에 몹시 불안해하며

지내던 왕자는 마지막으로 북문으로 유람을 나갔다가 수행자를 보게 되었는데

세상의 온갖 근심과 불안에서 풀려나 자유롭고,

행복하게 지내는 수행자를 보고 싯다르타 자신도 덩달아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싯다르타 왕자는 이 세상에 고통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넘어선 행복의 경지도 분명히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커다란 행복감에 젖게 되었다.

그리고 태어난 자는 누구나 늙고 병들고 죽어간다.

언젠가 소멸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일어나는 생로병사의 엄연한 사실에 대해

눈을 감게 하고 더 큰 쾌락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언젠가는 부딪히고야 마는

존재의 결말을 두려워하고 피하다 끝내 무릎을 꿇게 된다.

대체 어디에서부터 이런 괴로움의 순환은 시작되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싯다르타(석가모니 부처님)가

왕자는 사무 윤관을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가장 현실적으로 인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가를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무 유관은 싯다르타가 출가하기 전,

성의 동문에서 늙은 사람,

남문에서 병든 사람,

서문에서 죽은 사람,

북문에서 수행자들을 보았는데,

사대문에서 생로병사의 고통을 보고

인생의 무상을 느껴 출가를 결심한 일을 말한다.

 

 

3. 석가모니 부처님의 출가

싯다르타 왕자가 출가를 결심하자 아버지 숫도다나 왕은 간곡하게 말렸다.

출가를 포기하기만 한다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들어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싯다르타 왕자는

“만일 제게 영원한 젊음과, 건강과, 생명을 주실 수 있다면

출가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는데 아버지 숫도다나 왕은 들어줄 수는 없었다.

싯다르타 왕자는 아들 라훌라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에게 작별 인사도 하지 않고 성문을 나서게 되었다.

 

싯다르타 왕자는 성문을 빠져나와야 했는데,

성문 앞에 도착하자 어디선가 말이 나타나 싯다르타를 태우고 가볍게 날아올랐다.

그리하여 성문을 통과하지 않고도 성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유성출가 성을 넘어 출가하다란 모습을 뜻한다.

 

성을 나온 싯다르타는 말과 마부를 돌려보낸 뒤

가지고 있던 칼로 머리와 수염을 자르고 지나가던 사냥꾼과 옷을 바꿔 입었는데

누가 봐도 완벽한 수행자의 모습이 되었고 스승을 찾아 길을 떠났다.

왕위도 버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뒤로 한 채 깨달음의 길로 나아간 이날은

싯다르타 왕자의 나이가 29세가 되던 해 음력 2월 8일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에서 이날을 출가 제일로 기리고 있다.

 

부처님의 출가를 ‘위대한 포기’라고도 말한다.

그 이유는 부친을 이어 왕이 될 일국의 왕자가

모든 세속적 가치를 과감히 버리고 떠나는 그 자기 버림으로

고통에서 헤매는 모든 사람에게 해탈과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었기 때문이다.

더 큰 의미를 위해 자기 소유를 과감히 버린 것이다.

 

싯다르타 왕자는 출가한 이후 집을 떠나 걸식 생활을 하며 수행하였다.

수행하는 사상가들이 몰려 있는 웨살리로 향하였고,

그곳에서 요가의 대가인 알라라깔라마를,

이후 마가다국 라자가하의 웃다까라마뿟따를 찾아가

그들의 궁극의 경지라고 여기는 선정의 단계를 체험하였다.

선정에 들었을 때도 번민도, 괴로움도 사라졌지만 선정에서 나오면

여전히 욕심과 어리석음의 존재로 돌아갔다.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가장 높은 경지에 오른 수행자 고따마에게

교단에 남아 함께 제자들을 가르쳐 줄 것을 요청하였지만

고따마는 거절하고 그곳을 떠났다.

 

수행자 고따마는 치열한 고행에 들어가기로 하여

절대적으로 식사량을 줄이고,

호흡을 줄일 뿐만 아니라 지독하게 몸을 괴롭히는 행위를 이어 갔고,

다른 사람들이 그가 죽었다고 착각할 정도로 그 고행은 혹독했다.

6년간 한결같이 고행해 왔던 고따마는 어느 순간부터 깊은 회의에 빠지게 되었다.

 

고행은 육체를 극단적으로 학대하기만 할 뿐 맑고 건전한 정신을 방해했으며,

그런 상태에서는 진정한 행복의 경지에 이를 수 없다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고따마는 고행을 포기했다.

바른 길이 아니라고 판단이 내려지면

가차 없이 그 길을 버리는 것이 고따마 싯다르타의 방법이었다.

 

고따마란 뜻은?

석가모니불의 어릴 적 이름은 산스크리트어로 싯다르타이며,

성은 산스크리트어로 가우따마이다.

영어로는 고따마라고 한다.

싯다르타는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는 자.

가우따마는 고따마의 후손들이라고 의미한다.

한편 석가모니 붓다의 이름은 고따마 싯다르타였다고 말한다.

이름을 풀어서 말하면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목적을 성취한 사람이다.

 

4. 석가모니 부처님의 수행

고따마는 네란 자라 강으로 가서

고행하느라 돌보지 않은 육체의 더러움을 말끔하게 씻어 냈다.

그리고 때마침 수자따 여인이 가지고 온 우유죽을 받아 마시고 기력을 되찾았다.

그 광경을 본 다섯 명의 수행자들은

고따마는 타락했다며 그를 버리고 바라나시 녹야원으로 떠났다.

 

홀로 남은 고따마는 주변에서 보리수 한 그루를 발견하였다.

그 나무 아래에 마침 근처를 지나던 상인들이 올린 풀로

자리를 만들어 깔고 앉은 고따마는 “바른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결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 결심을 하고

선정에 잠겼는데 마왕이 나타났다.

마왕은 부처가 탄생하는 것이 두려워 보리수 아래에서 쫓아내려고 했다.

마왕은 사람들로 하여금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이끌려

악업을 짓게 만들고 그로 인해 생사윤회를 반복하게 하는 어둠의 그림자였다.

고따마는 마왕이 위협하고 회유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흔들리지 않았고 선정에 잠겼다.

 

마왕은 성불하려면 아주 많은 선행을 쌓아야 하는데,

당신이 그만큼 선업을 지었다는 걸 누가 증명할 수 있느냐? 하고

선정을 하고 있는 고따마에게 따졌다.

석가보살은 참선하는 자세에서 조용히 오른손을 풀어 아래로 드리웠는데

그의 손가락은 대지를 가리켰다.

그러자 대지가 크게 진동하면서 “내가 증명합니다.”라고 외쳤다.

 

이 소리에 마왕과 그를 따르던 무기가 크게 놀라 사라졌고,

조용해진 보리수 아래에서 보살은 천천히 선정에 잠겨 갔다.

석가보살이 자신이 성불할 자격을 갖추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오른손으로 대지를 가리킨 이 손 모양을 항마촉지인이라고 한다.

 

경전에 보면, 성불을 앞둔 고따마 싯다르타를 보살이라고 부른다.

지혜를 얻기 위해 수행하는 사람, 부처가 될 것이 확정된 사람이라는 뜻이다.

석가보살의 의미는 관음보살과 같은 성인으로서의 보살마하살 외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 또한 보살이라고 칭한다.

석가보살은 중생 구제와 깨달음이란 두 가지 길을 걸었다.

구도자로서의 보살 역시

이러한 석가보살의 길을 따라 중생 구제와 깨달음의 길을 걷는다.

보살의 삶을 걸어야 부처로서의 삶이 열린다.

 

5.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음

그토록 끈질기게 자신을 따라다니며 괴롭히던 마왕도 물리쳤고,

세상은 깊은 잠에 잠기게 되었다.

적막한 세상 속에서 석가모니 보살만이 홀로 깨어 생사란 대체 무엇이며,

어떻게 생겨났는지, 생사를 벗어난 영원한 행복을 얻기란

과연 불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깊은 삼매에 잠겨 사색하고 있었다.

그리고 새벽녘에 보살은 깨달았다.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어 가며 고통의 눈물을 흘리는 이 사바세계가 아니라,

나고 죽음이 사라진 해탈 열반의 세계가 보살을 향해 문을 활짝 열었던 것이다.

 

이제 그에게는 나고 죽는 일 따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부처가 되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35세 되던 해 음력 12월 8일이다.

이날은 성도재일이라 하는데 불교가 시작된 매우 뜻깊은 날로 여겨지고 있다.

 

깨달음을 얻고 난 부처님은 여러 나무 아래로 옮겨 다니면서

인간이 왜 늙고 죽음의 괴로움을 겪고 있는지,

그 괴로움과 불안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지에 대하여 더 깊이 사색을 했다.

그리고 연기의 이치를 터득하여

보리수 아래에서 법의 온전하고 깨끗한 기쁨을 만끽했다.

 

6.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

부처님은 누구에게 가장 먼저 이 가르침을 들려줄 것인지 살폈고,

마지막까지 함께 고행했던 다섯 명의 수행자를 떠올리고는

그들이 머물고 있는 바라나시 녹야원으로 향했다.

부처님은 다섯 명의 수행자에게 그들이 현재 하고 있는 고행이

왜 그릇된 것인가를 지적하기 위해 중도의 가르침을 펼쳤다.

전통 종교나 사상의 극단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깨달음의 길과 인간이 나아갈 방향을 중도로 밝히신 것이다.

 

부처님은 괴로움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 원인과 소멸을 알아야 함을 알려 주었으며,

괴로움을 없애는 여덟 가지 바른길인 팔 정도를 들려주셨다.

다섯 명의 수행자는 부처님에게 가르침을 전해 듣고

성자(아라한)가 된 최초의 제자였다.

며칠 뒤 야사와 그의 친구들이 부처님 계신 곳으로 다가와 법문을 듣고 성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세상에는 부처님과 그 제자인 60명의 성자가 생겨났다.

한편 아들 야사를 찾아온 부모는

부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듣고 최초의 재가신자가 되었다.

이리하여 세상에는 법을 설하는 부처님과 가르침,

그리고 수행 공동체의 삼보가 갖추어졌다.

아라한(성자)이란?

번뇌를 남김없이 끊은 경지에 오른 사람으로 줄여서 나한이라고 한다.

 

부처님은 아라한의 경지에 오른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비구들이여 전법의 길을 떠나라. 많은 사람의 이익과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간과 신들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하여

전법의 길을 떠나되 두 사람이 같은 길을 가지 말라,

나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웰라로 가리라.” [잡아함경 제39권]

 

부처님은 남녀노소와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을 만났다.

수많은 사람이 부처님을 뵙고 가르침을 전해 듣고

어떤 이는 온갖 괴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났고,

어떤 이들은 세속에 머물러 살면서도 선업을 짓고

세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세상은 지혜와 자비의 감로 법문으로 목을 축였고, 눈을 떴다.

35세에 깨달음을 이룬 부처님은

사람들을 만나 진리의 세계로 이끌어나가는 동안,

사람들은 부처님에게 엄청나게 모함을 하고 모욕을 퍼붓기도 하였지만,

부처님은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세상의 칭송에 우쭐해지거나 비방에 위축되지도 않고,

한없는 자비를 품고 담담한 마음으로 45년간 세상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전하며 진리의 세계로 이끌어 내시며 일생을 보냈다.

 

 

7.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

어느덧 80세에 이른 부처님은 이제 마지막 전법 여행에 나섰다.

부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전파하였고

열반에 들 때까지 틈나는 대로 제자들과 신자들에게

유언과도 같은 말씀을 들려주셨고 대반열반경에 언급되어 있다.

 

“아난이여, 나는 이제 늙고 지쳤다.

인생의 기나긴 길을 걸어와 어느 사이 노령에 이르렀다.

여든이 되니 이 몸을 움직이는 것이 마치 낡은 수레가

가죽끈의 도움으로 간신히 움직이는 것과 같구나/ 세상은 이처럼 덧없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부디 이 세상에서 스스로를 섬으로 삼고 스스로를 의지하라.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말라.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의지하되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말라.” [마하파리닙바나]

 

인간은 덧없는 존재이면서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다.

하지만 부처님은 그렇게 불완전한 자기 자신이

바로 깨달음을 이루고 실천해 가는 주인공임을 거듭 강조하셨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어서 아무리 불생불멸의 진리를

깨달은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그 육신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대장장이 쭌다에게 마지막 공양을 받으신 뒤에 꾸시나라의 조용한 들판,

사라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 곳에 도착하셨다.

부처님은 그곳에서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고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대고 누우셔서 말씀을 하셨다.

“모든 것은 변한다. 게으름 피우지 말고 정진하라.”

 

이렇게 마지막 가르침을 남기신 뒤 조용히 선정에 드신 채

음력 2월 15일 완전한 열반으로 들어가셨다.

음력 2월 15일을 열반 제일이라 하여 기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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