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

오봉산 석굴암 이야기

월광화 2024. 4. 18. 08:56

중창주 초안 큰스님

 

 

 

오봉산 석굴암 중창주이신 초안당 유성 대선사
본관이 려산 송(宋)씨요, 속명은 만석(萬錫)으로,
1926년 6월 15일 강원도 평강군 남면 천마리에서
엄부(嚴父) 송요현님과 자모(慈母) 조병길(삼매심)님의 3남으로 태어나셨습니다.

13세때인 1938년 금강산 건봉사로 출가득도하셨으며,

1940년 도봉산 망월사에서 박동암 대선사를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하고

1943년 해인사에서 하동산 대선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하셨습니다.
이후 봉선사 강원 대교과를 졸업한 후

금강산 유점사, 통도사, 월정사, 마곡사, 선학원 등

제방선원에서 안거하며 선수행에 정진하신 바 있습니다.


그러던 중 6.25를 맞아 참전하시어 격전중 총상을 입으시고

1954년 5월 26일 의병 제대한 선사는 은사이신 박동암 대선사께서

당신이 수행득도한 오봉산 석굴암이라는 좋은 나한기도 도량이

전화로 소실됐으니 가서 복원하라고 말씀하심에 따라

모친 조삼매심 보살(1977년 87세로 별세)과 함께

1954년 4월 5일 석굴암에 첫발을 디딘 이래

지난 45년간 일념으로 중창불사에 매진해 오셨습니다.

석굴암은 당시 모든 전각이 폭격으로 파괴되고 남은 것은

단지 한 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정도의 석굴과 폐허 속에서

수습한 지장보살님과 나한님 석상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후 40여 년간 군부대안에 위치해

통행이 자유롭지 못한 열악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낮에는 백리 길을 마다 않고 탁발을 다니시고,

밤에는 축대를 쌓으며 불사에 매진하셨습니다.

차량이 올라다닐수 없어 10리 산길을 기와 한장,

나무 한 사이도 일일이 져 날라야 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선사의 청정한 수행원력과 뼈를 깎는 헌신에 힘입어

72년 범종각, 74년 쌍사자 석등,

79년 요사채 증축,

81년 전기 가설,

82년 삼성각 증축,

85년 봉향각 신축 등의 차례로 불사가 하나 둘씩 이루어져

현재와 같이 손색 없는 가람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선사는 또한 어려운 중창 불사의 경황중에도

육군 30사단 92연대 법당 건립을 포함, 인근 부대의 군법당을 건립하시고

법회활동을 지원하는 등 군포교 후원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여 오셨습니다.

그리고 열반에 얼마 남기지 않으시고는 봉선사 스님들을 위해 써달라며

거액의 장학기금을 보시하셨으며, 복지사업에 큰 관심을 가지시어

어려운 재정속에서도 각종 사회복지 사업에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특히 40여년간 빈한한 사중살림에도 불구하고

부모없이 오갈데 없는 아이들 11명을 훌륭히 가르치어

사회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역군으로 키우셨습니다.

이렇듯 반 평생을 바쳐 석굴암 중창불사를 위해 용맹정진 하시던

초안선사께서 1998년 7월 2일(음력 윤 5월 9일)

새벽 홀연히 열반에 드셨으니 세수 73세, 법랍 60세 때의 일입니다.

사흘 후 다비식에서 오봉산 기슭에

영원히 남을 오색 찬란한 사리 59과를 남기신 초안선사는,

평생 친자식처럼 가르치며 키워온 상좌 현 주지 도일스님에게

석굴암 중창대작불사의 원만성취를 부촉하고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창건및 연혁

굴암 창건에 대해선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께서 창건했으며,

고려 공민왕 당시 왕사(王師)였던 나옹화상께서 3년간 수행정진 하셨다고 한다..

초안스님의 은사이신 동암선사께서는

조국광복을 위해 끊임없이 상해 김구선생의 임시정부를 도와

광복 운동을 하시면서 틈틈이 석굴암에 오셔서 수행정진 하셨고,

조국은 해방이 되었지만 1950년 6·25사변으로 인하여

석굴암의 전각이 모두 소실되고 말았다.

창건주 초안스님의 세수 28세 1954년 6월 5일 석굴암에 오셨을 때에는

대지 한평도 없었고, 법당은 완전 전소되고,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석굴안에는 전화로 인해

아미타불, 지장보살, 나한님과 수구다라니 목판만 남아 나뒹굴고 파손되어 있었다.

 

안스님께서 모두 소중히 수습하는 동시에,

모친 조 삼매심 보살님, 화주 윤 일광심보살님과 함께

폐허가 된 경내지에

임시로 움막을 짓고 주변에 널려 있던

수많은 전사자들의 시신을 화장 또는 안장해 주셨다.

 

그리고 석굴암의 중창복원 불사를 일심으로 발원하는 천일기도에 들어가셨다.
이로써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초안스님과 두 분 보살님의 뼈를 깎는 헌신과

간절한 기도 원력 덕분으로 차근차근 불사를 이루어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폐허위에 맨손으로 오직 중창불사에 대한 일념만 갖고

지극정성으로 천일기도에 들어가니,

기도에 동참했던 신도들의 입에서 입으로

석굴암의 수승한 기도영험이 널리 알려지면서

복원불사에 동참하려는 새 신도들이 하나, 둘 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쌀 한말, 기와 한장도 일일이 십리 길을 걸어서

이고 지고 날라야 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세 분의 원력과 신도님들의 지극정성으로 불사는 하나 둘씩 이루어져 나갔다.

그리하여 1954년부터 시작된 복원불사는

대지조성 152평, 축대, 석굴확장, 요사채 복원, 삼성각 신축, 대웅전 신축,

석가모니 본존불과 관세음보살, 대세지 보살상 신 조성, 범종(500관) 및

범종각 낙성, 쌍사자 석등, 전기시설, 삼성각 신축, 봉향각 신축,

진입로 확장보수 불사 등의 차례로 이루어져

현재와 같이 손색이 없는 가람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도 서울에 위치한 북한산과 도봉산은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드문 아름다운 국립공원으로 이름나 있으며,

그 중에서도 산세가 가장 뛰어난 도봉산의 서쪽 다섯 봉우리가 그 위엄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오봉(五峰)의 서남쪽에 있는 관음봉(觀音峰) 중턱에 자리잡은 석굴암은,

위로는 도봉이 치닫고 아래로는 삼각산이 모여서

마치 여러 별이 모여 북극성을 떠받들고 있는 것 같아 그 산세가 크고 뛰어나며,

물 또한 맑고 골이 깊어 수행하는 사람이 살기에는 더없이 좋은 사찰입니다.

도봉산은 주봉인 자운봉(紫雲峰)에서 남쪽으로 만장봉(萬丈峰).

선인봉(仙人峰)이 있고, 서쪽으로 오봉산 석굴암(五峰山 石窟庵)이 있으며,

우이령을 경계로 북한산을 접하고 있습니다.

도봉(道峰)은 풍수지리상으로 왕관(王冠)의 형상을 하고 있으니,

서쪽의 오봉(五峰)은 주봉을 호위하는 장군기마상(將軍騎馬像)이라 할 수 있습니다.

봉산 석굴암의 현 주지이신 오봉도일스님은 1954년 초안큰스님으로부터 시작된

복원불사를 지극정성으로 이루어 나가 현 가람의 모습을 만들어 내셨고

대지 2만평 매입하셨으며 나머지 5만5천평도 매입 추진중에 있습니다.

또한 요사체 겸 수련장을 85평 건축과 5백평 대지조성 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석굴법당 보수불사, 동암 대선사 사리탑과 초안큰스님의 사리탑 조성,

경내 조경 정비와 초안장학재단 설립 등을 추진중에 있습니다.
인연있는 모든 불자님들께서 불사에 많은동참 하여주기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석굴암 주지 도일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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