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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은 당뇨병 탓에 세상을 떠났다.

월광화 2015. 9. 29. 12:43

 

(군복입은 정조대왕)

 

 

조선 정조(1752~1800년)가 쓴 비밀편지가 공개되면서

 

정조의 사인(死因)이 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당뇨병 합병증이 유력한 사인으로 떠올랐다

 

 

이 편지들을 뜯어보면 한동안 당연시됐던 독살설의 가능성이 뚝 떨어집니다.

 

사인(死因)은 무엇일까요?

당뇨병일 가능성이 높은 듯합니다.


정조는 승하 2개월 12일 전에

“갑자기 눈곱이 불어나고,

머리가 부어오르며 목과 폐가 메마른다”고 썼고,

 

승하 13일 전에는 “뱃속의 화기가 올라가기만 하고 내려가지는 않는다.

올해 한 해 동안 황련을 1근 가까이 먹었다.

마치 냉수 마시듯 하였으니 어찌 대단히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밖에도 항상 얼음물을 마시거나 차가운 온돌의 장판에 등을 붙인 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일이 모두 고생스럽다”고 썼습니다.

 

우선 황련(黃蓮)이 어디에 쓰이는지

서울 종로3가 춘원당의 윤영석 원장에게 물었더니

그는 “염증과 열을 다스리기 위해 쓰이며 여러 증세를 종합해 보니

당뇨병, 고혈압 등 성인병의 합병증으로

심열(心熱)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증세를 더 찾아봤더니,

 

승하 1년 전에 외사촌 홍취영에게 보낸 편지에

 

“온몸에 뜨거운 기운이 상승해 등이 뜸을 뜨는 듯 뜨거우며,

눈은 횃불 같이 벌겋고 숨도 가쁘다,

시력이 나빠져 현기증도 있고 책을 오래 읽을 수 없다”는 기록이 있더군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주치의를 지낸

허갑범 연세대 명예교수는

“직접 진단을 안했고 정보도 부족해 확신할 수는 없지만

당뇨병 때문에 ‘고혈당성 고삼투압성 비케톤성 혼수’가 와서

숨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조심스럽게 진단했습니다.

 

허 명예교수는 인슐린 약이나 주사가 나오기 전인 1970년대만 해도

이 증세로 숨지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혈당이 500~600㎎/㎗, 심지어 700㎎/㎗까지 올라가기도 한다고 합니다.

 

40대에 희생자가 많았는데 정조 역시 48세에 승하했습니다

몸의 열기, 눈의 이상, 갈증 등은,

모두 당뇨병, 즉 소갈증(消渴症)의 대표적인 증세입니다.

사료를 통해 이전에 알려진 등창도 대표적인 합병증입니다.

혈당이 높으면 피가 끈적끈적해져서 말초신경까지 잘 흐르지 않습니다.

 

당뇨병 환자가 오래 누워있으면,

방바닥과 닿은 등에 피가 통하지 않아 썩게 되는 것이죠.

 

● 또다른 死因說

 

사인을 두고 논란을 낳고 있는 조선조 정조대왕의 죽음은 독살이 아니라

패혈증과 뇌졸중(중풍)이 직접적인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제시됐다.

생전에 정조가 겪었던 병증과 처방, 실록 등을 근거로

한의학적 관점에서 사망 원인이 제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사상체질과 김달래·김선형 교수팀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를 바탕으로

정조의 발병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질환의 증상과 처방,

어의와 정조 본인의 주장 등을 검토해 이 같은 결론을 얻었다고 26일 밝혔다.

연구팀은 실록과 승정원일기의 진료기록이,

모두 정조의 질환에 대해 같은 맥락의 설명을 하고 있으며,

특히 승정원일기에는 실록에 없는,

기본 증세와 처방 등에 대한 견해가 담겨 있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를 근거로 정조의 사망 원인을 2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급성 감염성 질환이나 패혈증 가능성이다. 


의학자들에 따르면 세종대왕도 당뇨병 때문에 숨졌다고 합니다.

세종은 실명을 하고 종창(腫脹)과 풍질(風疾)로 고생했는데,

이 역시 당뇨병의 합병증입니다.

지난해 MBC와 KBS2에서 방영한 두 드라마 ‘이산’과 ‘대왕세종’의 주인공이

모두 당뇨의 희생양이 됐다니 묘한 우연이군요.


옛날에는 임금처럼 잘 먹고 덜 움직이는 사람만 이 병에 걸렸지만,

지금은 인구의 10%가 환자라고 합니다.

당뇨병은 각종 합병증이 무서운 병입니다.

매년 1만 명 이상이 당뇨 합병증으로 발, 다리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고 있으며

이에 버금가는 수의 사람이 시력을 잃습니다.

뇌중풍, 심장병, 콩팥질환 등의 합병증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도 적지 않고요.

 

김 교수는 “요즘도 급성 감염성질환이나

패혈증은 치료시기를 놓치면 단시간에 사망에 이른다.”고 말했다.

연구팀이 추정한 또 다른 사망 원인은 뇌혈관 질환.

정조는 실제로 혈압이 높거나 뇌와 심혈관계 질환을 가졌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똑같이 당뇨병을 앓던 두 성군 세종대왕은 당뇨로 실면까지 했다죠,

정조와 세종의 병, 요즘엔 누구나 걸릴 수 있다는 것, 꼭! 명심합시다.

 

 

정조의 현판 글씨

 

 

월근문

뒤주에 갇혀 죽어간 아버지 사도세자를 본

정조(이산)는 멀리 휘경동에 있는 아버지묘를 쳐다보기좋은 곳,

창경궁의 경치 좋은 높은 언덕(지금의 통명전 뒤 언덕)에

어머니가 거처하실 '자경궁'을 짓고 대궐 밖 곧바로 건너다 보이는 곳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사당인 '경모궁'을 지었다.

그리고 자신은 일반 선비들의 집같은 '영춘헌'에 머물며 어머님을 곁에서 살펴드렸다.

창경궁의 '월근문'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 사당인 '경모궁'을 가기 위해 만들었다.

 

 

 

형형색색의 깃발이 나부끼고 악사들의 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위풍당당한 행렬. 정조는 사도세자 묘소에 갈 때마다 군복을 입고 말을 탔습니다.

정조의 화성 행차는 단순히 사도세자의 참배만을 위한 것이 아닌

왕권을 대내외에 과시함으로써 노론 세력들을 견제하기 위함이었겠지요.

군복을 입은 이유는 사도세자가 평소에 군복을 즐겨 입었기 때문이라는데요.

오매불망 아버지를 향한 마음.

 

 

지지대고개를 넘으며 그리운 마음을 담은 정조의 시 한편이 전해집니다.

 

아침이나 저녁이나/

사모하는 마음 다 하지 못해/

오늘 또 화성에 왔구나/

부슬부슬 비 내리니/

배회하는 마음 둘 곳이 없어라/

만약에 여기서 사흘 밤만 잘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네/

더디고 더딘 길 아바마마 생각하는 마음/

흘러가는 구름 속에 생기네

 

 

묵매도(墨梅圖) | 정조 , 1777년, 지본담채, 123.5*62.5cm

 

 

 

 

한여름 뒤주 속에서의 처참한 죽음.

사도세자는 왜 죽어야만 했을까요.

내시와 궁녀를 무참히 살해한 정신질환 때문?

역모를 꾀한 죄?

영조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당쟁의 희생양?

노론세력에 둘러싸여 자식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영조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영조는 나중에 자신의 결정을 후회했다죠.

아들을 향한 피 묻은 적삼이여, 피 묻은 적삼이여,

천추에 나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바라노라.”

아비의 애끊는 심정이 드러나 있습니다.

 

 

■ 모기를 미워함,

 

형체는 드러내지 않고 소리만 남아있네

어둠 타고 침을 놀려 주렴속 깊이 뚫고 오는구나.

세간에 많기도 해라 악착같이 이익 좇는 무리들.

권세가가 그들 따르는 건 또 무슨 저의인가.

 

정조대왕! 귀여우셔라!!!

 

 

정조의 글씨들

 

정조어록

 

 

8살때 외숙모에게 쓴 정조의 한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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