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

오백나한(五百羅漢)을 모시기 위해..

월광화 2014. 4. 27. 16:09

 

 

 

 

오백나한(五百羅漢)을 모시기 위해..

  

부처님 재세시 수행을 통해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한 5백 명의

뛰어난 제자를 오백나한 또는 오백상수라고도 하며

오백나한은 진리를 향해 깨달음을 추구해 가는 많은 수행자를 의미한다.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 함경도 함흥에서

아버지 환조의 상(喪)을 당하고 장사를 지내지 못하고 있던 중,

머슴이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다가 두 스님이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저기가 정말 명당자리군. 당대에 군왕이 나겠는데』

 

『정말 그렇군요.

저 자리는 틀림없이 군왕이 날 자리입니다.』

하는 말을 지나치다가 듣고 와서 전하니

이성계는 바로 두 스님을 만나 뵙고 그 명당자리를 가르쳐 달라고 해서

아버지를 장사지내 모시었으니 그곳이 바로 함흥의 정릉(定陵)이다.  

 

이렇게 하여 이성계는 무학대사에게서 명당을 얻어 쓰고

그 뒤에  꿈을 해몽해주는 말씀을 듣고 왕이 될 예시를 받았다.

그리고 공덕을 쌓기 위해 석왕사라는 절을 짓고

오백나한을 모시기 위해 웅진전을 지었다.  

 

그때 마침 함경도 길주에 있는 광적사가 병화(兵火)로 인하여

폐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방치 되어 있는 대장경 일부와

오백나한 상을 석왕사로 옮겨 모시기를 서원하고,

이 오백나한상을 길주에서 원산까지는 배로 모시고 난 뒤

원산으로부터 석왕사까지는 이성계가 직접 돌로 조성된

나한상을 한 분씩 한 분씩 정성껏 498분을 석왕사로 모시고

마지막으로 두 분 남은 나한상을 힘들고 지쳐서 한꺼번에 두 분을 모시었다.  

 

다음날 아침에 기도를 모시고 나서 살펴보니

맨 나중에 모셔온 존상 한분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를 않는 것이었다.

이성계가 놀라 사방을 두루 찾아보았으나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포기를 하고 잠이 들었는데 그날 밤 꿈에 사라진 존상이 나타나서 말하였다. 

 

『그대가 그만큼 신심이 발하여 나한상을 하나씩 업어 봉안하더니

나만은 따로 업어가지 않고 덧붙여 업어가니

어찌 그렇게 성의가 부족할꼬.

나는 그런 푸 대접 받기 싫어 묘향산 비로암에 가 있을 테니  그리 알게』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

 

이성계가 곧 바로 묘향산 비로암으로 사람을 보내어 알아보니

그전에 없던 나한상이 한분 계시다는 것이었다. 

 

이성계는 크게 뉘우치고 비로암으로 가서 정중하게 참회하고 모셔 왔으나

그 이튿날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해서 다시 모셔 오기를 몇 번을 하였으나 소용이 없어

결국엔 명패만 모시게 되었다.

이로서 석왕사 웅진전에 오백 나한가운데

한 분의 나한이 모자라는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성계는 오백 나한을 모셔 놓고 삼 년에 걸쳐

오백성재(五百聖齋)정성껏 올리니 과연 뒤에

조선을 건국(建國)하고 임금의 자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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