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세 영조 “하늘에겐 땅이 있어야…”
조선 21대 임금 영조(1694∼1776)는
첫 번째 왕비 정성왕후와 사별한 뒤
66세 때 정순왕후를 새 왕비로 맞았다.
당시 정순왕후의 나이는 15세로 영조보다 51세나 어렸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후사를 이을 아들 사도세자도 있는 상황에서
후궁도 아닌 처녀에게 새장가를 든 이유가 뭘까.
이순구 국사편찬후 편수관은 최근 한국학 중앙연구원이 발간한
'영조대왕자료집'에 실린 해제 글을 통해
"영조의 아버지 숙종이
후궁이었던 희빈장씨를 왕비로 삼았다가 후회한 것이
영조의 결정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숙종은 희빈 장씨에게 자진(自盡·자살)을 명한 비망기(備忘記)에서,
첩을 정실로 삼지 말라는 '춘추'의 뜻을 따르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정성왕후가 죽고 영조가 홀아비가 됐을 때
영조에겐 영빈 이씨 등 후궁이 있었다.
당시 양반가에서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 첩이 있는
홀아비라면 재혼을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영조는 "제왕이 위로 종사(宗社·국가)를 받드는 일은
필서(匹庶·평민)와는 다름이 있으니,
하늘에게 땅이 없으면 과연 하늘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며
왕비가 꼭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 편수관은 "
영조로서는 왕비 역할을 며느리에게 맡길 수 없었고,
후궁을 올려 왕비로 삼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으니
결국 새 왕비를 맞아들이게 된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 그는 영조가 두 번째 비를 간택할 때
처녀의 나이 상한선을 18세로 고집한 이야기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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