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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시면 사형까지 내린 영조, 뒤로는 술을 즐겼다

월광화 2012. 7. 11. 14:16

 

 

 

조선 21대 왕 영조(1694∼1776)는

조선의 왕 가운데 가장 강력하게 금주령을 시행했다.

 

백성의 주식인 쌀이 술을 빚는 데 쓰이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관료들이 반주(飯酒)를 하다 당파싸움이 폭행으로 번지는 일도 잦았기 때문이다.

영조는 금주령을 어긴 사람을 최대 사형에 처할 정도로 중죄로 다스렸다.

그런데 정작 영조 자신은 술을 즐겨 마셨다는 주장이 나왔다.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화예술학부 교수는 올가을 출간할 예정인

'영조의 건강비결'(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에서

 

"영조가 금주령을 내린 이후 술 대신 송절차(松節茶)를 즐겨 마셨다고

조선왕조실록에 전하는데,

이는 차(茶)가 아닌 송절주(松節酒)라는 술이었다"고 밝혔다.

송절주는 싱싱한 송절(소나무 가지의 마디)과 쌀로 빚는 약용주.

주 교수는 "영조는 하반신 관절이 약했는데 여기에 송절주가 효과적이었다"며

"원래 있던 송절주라는 술 이름을 영조가 송절차로 바꿔 불렀다"고 설명했다.

조선시대 문인 성대중의 '청성잡기(靑城雜記)'에는

영조가 송절차를 내렸는데 취기가 돌았다고 쓴 구절이 나온다.

어사 박문수는 영조에게 술을 적게 마시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1725년 청나라 사신단 부대표로 조선에 온 아극돈이

그린 '봉사도'(奉使圖·중국민족도서관 소장).

조선 왕실에서 사신을 접대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왼쪽(점선 안)에 곤룡포를 입고 앉아있는 사람이 영조다.

주영하 교수 제공


 

조선 왕들의 평균수명은 47세였는데

영조는 83세까지 살아 조선의 왕 가운데 가장 장수했고

재위기간도 52년(1724∼1776)으로 가장 길었다.

 

 "영조는 장수했지만 체질적으로는 약골이었다"며

"소화를 돕기 위해 삶은 밤을 자주 먹었고,

 

몸에 좋다는 사슴꼬리구이와 요통을 완화한다는

메추라기구이를 좋아했으며,

 

나이가 들면서는 입맛을 돋우기 위해 고추장과 물김치,

간이 밴 조기를 즐겨 먹었다"고 말했다.

 

"장수마을에서는 노동과 함께 적당한 반주를 즐겼는데

영조도 약용주인 송절주를 적당히 마신 것이

장수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영조는 보리밥을 물에 말아먹는 소박한 밥상을 즐겼다".

 

'승정원일기'의 기록을 토대로 쓴

영조의 일상 식사'에 따르면

영조는 소화 기능이 원활하지 않았고

소식(小食)을 했으며 차고 설익은 음식을 꺼렸다.

 

영조는 민간 백성들처럼 보리밥을 물에 말아 먹었는데

간간한 조기를 반찬으로 삼았다.


또 "승정원일기에 나타난 영조의 식성은 세간에 알려진

그의 신경질적인 성격과 상통한다"고

 

영조는 원래 이복형인 경종이 세자로 정해져 있어

왕위에 오를 수 없는 운명이었다.

 

왕위에 오르지 못한 왕자들은

역모 혐의로 몰려 사형 당하기 일쑤였던 만큼

젊은 시절 영조의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는 것.

즉위 후에도 영조는 여러 정치적 위기로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