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의 제삿날 일가친척이 큰집에 모였다.
제사상을 차리느라 모두 분주히 움직이는데
제사상 위에서 배가 하나 떨어졌다.
막내 며느리가 재빨리 배를 집어 치마 속에 숨겼다.
이를 본 첫째 며느리가 동서를 크게 나무랐다.
나중에 이를 전해 들은 막내아들은
부인을 따로 불러 치마 속에 배를 숨긴 이유를 물었다.
부인이 배가 먹고 싶어서 숨겼다고 하자
그는 치마 속에 감춘 배를 달라고 한 뒤
손수 배를 깎아 부인에게 줬다.
조선 시대 대유학자 퇴계(退溪) 이황(1501-1570)과
그의 아내 권씨 부인의 이야기다.
퇴계는 신성한 제사 음식에 손을 댄
부인을 꾸짖기는커녕 직접 배를 깎아 부인에게 줬다
"퇴계의 이런 태도는 부인인
안동 권씨의 모자람을 채워주고자 했던 것"이라면서
"인간 중심적 사고에 바탕한 배려의 마음"이다.
"퇴계의 삶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컸다"면서
"할머니, 어머니, 첫째 부인, 둘째 부인,
며느리와 손자며느리로 이어지는
'퇴계의 여인들'은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거나
큰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퇴계 선생이 살았던 조선 사회는 엄격한 신분제 사회이자
남존여비(男尊女卑)의 가부장적 사회였는데
어떻게 여인들에게 그렇게 잘해줄 수 있었는지
처음엔 너무 의아했는데 나중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그는 "퇴계 선생을 천 원짜리 지폐의 인물로 모시면서도
과연 퇴계 선생이 어떤 분이고 어떤 가르침을 줬는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에서 책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부인, 며느리, 손자며느리와의 일화,
편지글에서 엿볼 수 있는 퇴계 선생의 모습은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차이가 있었습니다.
우리 역사상 가장 존경을 받았던 퇴계 선생은 아랫사람,
특히 여인들에게 섬김과 낮춤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선생은 우월한 위치에 있었지만 자신을 낮추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 고개를 숙이고 그들을 더 받들려고 했습니다.
제가 감정이 무딘 사람인데도 감동, 감동의 연속이었습니다."
'퇴계처럼' 펴낸 김병일 한국국학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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