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국사의 원래 이름은 정인사로,
조선 초기 세조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맏아들 의경세자 숭(崇)을
덕종(德宗)으로 추존하고 넋을 위로하고자 절을 짓게 한 것이다.
이후 연산군 때 화제로 소실되어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가
숙종 대에 와서 그의 계비인 인현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중수했다.
한때 이 절은 119칸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크고 단청이 아름다워,
운악산의 봉선사(현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와 쌍벽을 이루었다고 한다.
현재의 수국사(守國寺)는 광무1년(1897년) 당시 북한산성 총섭으로 있던
월초(月初) 거연(巨淵) 스님의 신심을 높이 산 高宗의 내탕금 원조와
신도들의 도움으로 중창불사를 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때의 규모는 건물 6채로 50여 칸에 이르렀다고 한다.
한국전쟁 때 화제로 건물 대부분이 소실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이후 스님들의 노력으로 중창불사를 계속해왔다.
오늘날의 모습은 1985년부터
1996년 사이의 대대적인 중수에서 108평 규모의
대웅전과 그 옆의 20평 규모의 종각에
모두 금옷을 입힌 것이 전해오는 것이다.
수국사는 지금도 계속해서 조성불사를 이어가고 있다.
사찰 측의 발표에 의하면,
약 10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불교전시관을 만들고,
대웅전 앞에 20평 규모의 연못을 만들어,
그 물에 황금사원을 비치게 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저 연못 속 황금사원에까지
부처의 자비가 가득 차기를 .........
오비구상
명부전 옆쪽에 위치한 야외 지장전(地藏殿)
명부전 원래는 종무소였던 건물이랍니다.
명부전 처마에 걸려있는 이 목탁이 목탁새의 둥지
이 건물이 종무소일 때 이 목탁은 공양시간을 알리기 위해
기둥에 매달아 놓고 치던 목탁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목탁에 진객이 찾아들었다고 합니다.
1984년 봄에 새가 둥지를 튼 것을 처음 발견했다고 합니다.
절에서는 이 신기한 일에 놀라워 하면서 보호했는데
새끼를 치고는 날아갔다가 이듬해 다시 찾아들었다고 합니다.
절에서는 이 새를 목탁새라 부르는데
목탁새가 찾아오는 시기는 3월 말이나 4월 초순에 와서
부처님 오신 날을 전후해서 새끼를 치고는
새끼들이 날 수 있는 6월 초쯤에 날아간다고 합니다.
해마다 찾아와서는 대여섯 마리의 새끼를 치고
나간다는 주인공은 '딱새'라고 합니다.
수국사가 유명해진 것은 이 딱새의 영향이 컸다고 합니다.
저도 tv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 수국사 찾아가기 (2010년 7월 기준)
서울역(1,4호선 3번 출구)에서 702번(숭례문 중앙차로 정류장),
9701번 좌석버스(숭례문 가변 정류장)를 타거나,
서울역버스환승센터(서울역 9-1번 출구)에서 702번을 타고 선정중고 하차
5호선 서대문역(3번 출구), 3호선 녹번역(5번 출구)에서 702번, 9701번 이용
선정중고 정류장에서 타고 온 버스가 가는 방향(서5릉, 고양시)으로
조금만 가면 길 건너편에 절을 알리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정류장에서 절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
지하철 6호선 구산역(3,4번 출구)에서 서5릉 방향으로 도보 20분
서울시내에서 751번(구산동~숭실대), 752번(구산동~상도동),
7022번(구산동~서울역), 7720번(구산동~신촌)을 타고 구산동 종점 하차,
서5릉 방향으로 4분 정도 걸으면 선정중고 정류장과 수국사 이정표가 나온다.
★ 수국사 관람정보
승용차로 경내까지 진입이 가능하나,
주차공간이 그리 넓지 못하다.
범종각에 매달린 커다란 목탁에
이곳의 길조(吉鳥)로 일컬어지는 목탁새가 산다.
보통 여름에 머문다고 한다. (1년 내내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님)
소재지 - 서울특별시 은평구 갈현동 314 (☎ 02-356-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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