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선사가 하루는 그의 제자와 함께 시골 산길을 가고 있었다.
반나절을 쉬지 않고 계속 걸어온 터라 제자는 상당히 지쳐있었다.
...그래서 제자는 좀 쉬었다 가자고 했지만,
경허는 들은척도 안하고 서둘러 발길을 재촉할 뿐이었다.
기진맥진해진 제자는 도저히 못참겠다는 듯이 말했다.
'스님 제발 좀 쉬었다 가지요. 다리가 아파 도저히 못걷겠습니다."
"그래? 진짜 다리가 아퍼 못걷겠다는 거냐..
내가 보기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은데.. "
제자는 농담할 기분이 아니라며 곧 주저앉을 자세를 취했다.
그때 경허선사가 갑자기 발길을 돌리더니
밭을 갈고 있던 한 처자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갑자기 처자를 껴안아 버리는게 아닌가!!
그곳에서 같이 밭을 갈고 있던 농부는 이 모습을 보고,
완전히 노발대발해서 밭을 갈고 있던 쟁기를 놓고
죽일듯이 경허와 그 제자에게로 달려왔다.
제자는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어떻게 이상황을 분석할 틈도 없이,
죽일듯이 달려오는 농부를 보고, 일단은 그 자리를 피해야 했다.
그리고 경허와 그 제자는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십리정도를 달렸다.
그러자 한참을 계속 쟁기를 가지고 쫓아 오던 농부도 지쳤는지,
더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헉헉 거리는 숨을 돌리며,
제자가 갑작스런 스승의 행동에 대해 따져물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러자 경허가 답했다.
"이눔아 봐라 이렇게 한참을 올 수 있었는데,
왜 지쳐서 못간다고 투정을 부렸느냐 이눔아.."
경허선사 입산가(鏡虛禪師 入山歌)
세상만사 모든 일을 홀연히 생각하니
한바탕 꿈이로다
일대사를 깨치고자 깊은 산중에 들어가니
새소리 물소리가 은은히 들려오고
머루다래 덩쿨들이 천길이나 높은 솔에
백번이나 얽혔는데 그 틈에 터를 잡아
두어간 띠 집 짓고 뜻 맞는 벗과 함께
어떤 때는 풍월 읊고 어떤 때는 향 피우고
고요히 앉았으니
모든 망상이 사라지고 한 생각이 깨끗하여
출세간이 모든 이치 분명하게 드러나니
이 세상에 으뜸가는 훤출한 대장부라
무근초 불습수를 배불리 먹은 뒤에
천지삼라 만상을 모조리 인가하고
재(灰)머리 흙 얼굴로 꽃 피고 새 우는 곳
훨훨 뛰어 다니면서
나나리 나나리
이치는 단박에 깨치나 망상이 여전히 일어나도다
단박에 깨달아 내 본성이 부처님과 동일한 줄은 알았으나
수많은 생애를 살면서 익힌 습기는 오히려 생생하구나.
바람은 고요해졌으나 파도는 여전히 솟구치듯
이치는 훤히 드러났으나 망상이 여전히 일어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