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방 58

66세 영조, 15세 처녀에게 새 장가 간 까닭은

66세 영조 “하늘에겐 땅이 있어야…” 조선 21대 임금 영조(1694∼1776)는 첫 번째 왕비 정성왕후와 사별한 뒤 66세 때 정순왕후를 새 왕비로 맞았다. 당시 정순왕후의 나이는 15세로 영조보다 51세나 어렸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후사를 이을 아들 사도세자도 있는 상황에서 후궁도 아닌 처녀에게 새장가를 든 이유가 뭘까. 이순구 국사편찬후 편수관은 최근 한국학 중앙연구원이 발간한 '영조대왕자료집'에 실린 해제 글을 통해 "영조의 아버지 숙종이 후궁이었던 희빈장씨를 왕비로 삼았다가 후회한 것이 영조의 결정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숙종은 희빈 장씨에게 자진(自盡·자살)을 명한 비망기(備忘記)에서, 첩을 정실로 삼지 말라는 '춘추'의 뜻을 따르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정성왕후가 ..

자료방 2012.08.08

술 마시면 사형까지 내린 영조, 뒤로는 술을 즐겼다

조선 21대 왕 영조(1694∼1776)는 조선의 왕 가운데 가장 강력하게 금주령을 시행했다. 백성의 주식인 쌀이 술을 빚는 데 쓰이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관료들이 반주(飯酒)를 하다 당파싸움이 폭행으로 번지는 일도 잦았기 때문이다. 영조는 금주령을 어긴 사람을 최대 사형에 처할 정도로 중죄로 다스렸다. 그런데 정작 영조 자신은 술을 즐겨 마셨다는 주장이 나왔다.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화예술학부 교수는 올가을 출간할 예정인 '영조의 건강비결'(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에서 "영조가 금주령을 내린 이후 술 대신 송절차(松節茶)를 즐겨 마셨다고 조선왕조실록에 전하는데, 이는 차(茶)가 아닌 송절주(松節酒)라는 술이었다"고 밝혔다. 송절주는 싱싱한 송절(소나무 가지의 마디)과 쌀로 빚는 약용주. 주 교수..

자료방 2012.07.11

'절식(節食)의 왕' 영조, 사도세자의 식탐에 노하다

조선 헌종 14년인 1848년 대왕대비(순원왕후 김씨)의 육순과 왕대비(신정왕후 조씨)의 망오(41세)를 기념해 잔치상을 받는 장면을 그린 병풍의 일부. 그림 중 가운데 높은 자리가 비어있는 것은 당시 궁중 기록화에는 왕이나 왕비, 왕대비 등은 그려 넣지 않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왕실의 식탁' 심포지엄 - 조선 음식문화 기본 정신은 '절욕' 왕에 술·기름진 음식 자제 요구… 영조, 訓書 지어 小食 중요성 역설 조선 국왕의 수라상에는 전국 각지 산해진미가 올라왔다. 하지만 다 맛보아서는 안 됐다. 식탐의 '절제'야말로 치국(治國)에 앞서 갖춰야 할 수신의 제일 덕목이었다. '인문학자가 차린 조선왕실의 식탁'.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정정길)이 11일 주최하는 조선왕조 궁중음식..

자료방 2012.07.10

연산군은 독살 당했다

인수대비 조선 왕조에서 임금의 자리는 언제나 '독살' 을 경계해야 하는 위치였다. 왕권과 신권이 치열한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던 조선 왕조에서 택군의 정치, 재상정치를 강조했던 신권과 절대 왕권의 이상향을 강조했던 왕권은, 본질적으로 어울릴 수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임금은 언제나 신하를 경계해야 하고 신하는 맘에 안드는 임금을 제거하기 위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명분을 만들어야만 했다. 이 와중에 임금을 제거하기 위한 독살시도는 빈번하게 일어났다. 당파의 이해에 따라, 혹은 왕권의 계승순위에 따라 독살을 통한 자연스러운 정권교체야말로 조선 왕조 특유의 정치 행위였다. 지금 말할 연산군 그도 바로 그렇게 제거 당했다. 연산군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조선왕조의 대표적인 폭군이다. 연산군은 태..

자료방 2012.06.25

'마누라' 알고보니 조선양반이 썼던 아내의 극존칭형

한글편지로 본 그 시절 부부 조선시대 양반집 아내도 남편에게 '자내'라고 불렀다 임금의 명을 받아 부임지로 떠나는 길목에서, 왜군과 싸우는 전장의 한복판에서 남편은 아내에게 붓을 들었다. 하인들은 안주인의 말을 잘 듣는지, 젖먹이 아들은 돌잔치에서 무얼 집었는지, 궁금한 게 많았다. 동료들과는 한문편지를 주고받지만, 한자를 모르는 아내에게 띄운 편지는 늘 한글이었다. 대전 안정 나씨의 묘에서 16세기 초반 한글편지가 발굴·복원된 것을 계기로, 조선시대 부부관계나 생활상을 보여주는 한글편지가 주목받고 있다. 한글창제(1443년) 이후 19세기까지 작성된 한글편지(諺簡·언간)는 현재 약 2500통이 남아있다. 이 중 부부간에 주고받은 것은 약 1000통. 이번에 공개된 나신걸의 편지 외에, 경북 안동 이응태..

자료방 2012.05.24

띠풀이

쥐(子) 쥐띠는 호기심이 많습니다. 무엇이든 궁금한 것이 생기면 들여다보고 만져보고 물어보아야 합니다. 조용한 성격이지만 언제나 바쁘고 혼자 있어도 지루함을 모릅니다. 호기심 덕분에 많은 것을 알게되니 영리하다 칭찬받고 귀염받습니다. 한번 목표를 정하면 작은 씨앗이 땅을 뚫는 힘으로 밀고 나아가 싹을 틔우지만 쉽게 다른 목표를 찾기도 합니다. 새싹에 만족하지 않고 ?P까지 키워나간다면 좋은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소(丑) 소띠는 늘 할 일이 많습니다. 작은 일도 큰 일도 모두 내 일이라 생각하니 손이 천 개라도 모자랍니다.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고 어떤 일이든 시작하면 끝까지 해내고야 맙니다.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묵묵히 일하는 아름다운 성품을 지녔습니다. 너무 많은 일을 떠맡느..

자료방 2011.06.11

역대 대통령 주치의 어떻게 됐나

대통령 주치의는 '현대판 어의(御醫)'로 불린다. 국가원수의 건강을 돌보는 책임을 맡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무보수 명예직이지만 '최고 권위자'라는 명예를 갖기 때문에 병원 간, 학교 간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 박정희전 대통령(1963~1979 재임)때인 1963년 대통령 주치의가 정식 위촉된 것으로 알려졌다. 종두법을 도입했던 지석영 선생의 종손인 개업의 지홍창 박사가 1호였다. 대통령과 대통령의 가족의 건강을 돌보는 것이 주치의의 임무였다. 박 전 대통령 시절인 1970년 이래 대통령 주치의는 대부분 서울대 의대 교수가 맡았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1998~2003 재임)때 주치의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이 맡았다. 2008년에는 고려대가 어의 자리를 잡기 위해 적극 경쟁했다. 당시 이명박 당선인..

자료방 2011.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