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방 58

올림푸스 12신

1. Ares(아레스) 아레스는 '전사(戰士)'라는 뜻으로 전쟁의 신이다. 올림푸스 12신 중 하나다. 아레스는 행동과 결정을 주관하는 신이기도 하고 공포와 테러의 신이기도 하다. 그는 증오와 공포로 모든 전사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으며, 자기 아들까지 죽임으로 그와 반목하던 헤라클레스로부터도 존경을 받았다. 아레스는 제우스와 헤라의 아들이다. 그러나 제우스 혼자 아테나를 낳은 데 화가 난 헤라가 혼자서 아레스와 헤파이스토스를 낳았다는 출생설화도 있다. 2.Artemis(아르테미스) 달의 여신이자 사냥(수렵)의 여신으로 제우스와 레토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아폴론의 쌍둥이 누이동생이다. 수렵과 궁술을 맡아보고 또 야생동물, 어린이, 약한 자들을 수호하는 여신이다. 그리스 고전문학에서는 젊은 처녀신으로 묘사되어,..

자료방 2015.05.04

광해군

(광해군, 초상화) (광해군, 초상화) 우리 조선 왕조에서 왕위에 올랐으 되, 재임 중 잘 못 된 처세로 왕으로 인정 받지 못한 인물이 '연산군'과 '광해군'이다. 그리하여 '왕'으로 인정 받지 못 하고 왕자 시절 이름으로 역사에 남은 것이다. '연산군'은 알다시피 나라를 망치려 작정한 듯 무법적 반인륜 '폭정'으로 '중종반정' 때 쫓겨난 인물이다. 일각에선 그가 어머니 '폐비 윤씨'의 비참한 죽음을 겪은 충격으로 이상 성격이 됐을 거란 동정론을 펼치지만, 누구도 그가 '폭군'이란 점은 의심치 않는다. '광해군'은 어머니(계모) '인목대비'를 폐위하고, 친형 '임해군'과 동생 '영창대군'을 죽인 죄로 이른 바 '폐모살제'를 저질러 '인조반정'으로 물러난 왕이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왕권 찬탈'을 위해 ..

자료방 2015.05.02

소현세자

세자가 본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병을 얻어 병이 난지 수일 만에 죽었는데, 온 몸이 전부 검은 빛이었고 이목구비의 얼굴이 일곱 구멍에서 모두 선혈이 흘러나오고, 검은 천으로 그 얼굴 반쪽을 분변할 수 없어서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 그런데 이 사실을 외인들은 아는 자가 없었고, 상도 알지 못했다. 23년 6월 27일 기사 34살의 비극적인 죽음, 조선을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부국강병을 꾀할려던 한 인물의 죽음에 대한 기사였다. 의학에 문외인인 사관의 기록조차도 약물에 중독되었다고 표현할 만큼, 소현 세자는 보통 죽음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 죽음에 대한 의혹은 그 이후에 벌어진 상황으로 짐작하게 해준다. 아버지인 인조는 기년복(1년복)을 입었고, 신하들은 시마(3개월복)을 입었다. ..

자료방 2015.03.26

근친혼 성행한 신라 지배층

선덕여왕의 초상화 신라사회의 지배층은 스스로 성스러운 뼈다귀란 뜻의 성골(聖骨)과 진짜 뼈다귀란 뜻의 진골(眞骨)로 부를 정도로 신분을 절대적 분류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다 보니 성골인 선덕여왕이나 진덕여왕이 진골인 남성 귀족들을 제치고 임금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진성여왕이 결코 훌륭한 임금은 아니었지만 그에게 가해지는 비난이 과도하다는 이유는 그 이후로도 제56대 경순왕까지 다섯명의 임금이 더 있었고, 경순왕이 나라를 들어 왕건에게 바치기까지 왕조의 수명은 38년을 더 유지했다는 점에 이르면 명백해진다. 진성여왕은 겨우 11년을 재위에 있다 세상을 떴다. 그 뒤를 이은 다섯 임금의 평균 재위 기간과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그만이 집중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각간 위홍이 사망한 후의 상..

자료방 2014.01.31

서태후 이야기

서태후는 몰락한 관리의 딸로 태어나 가난이 싫어 궁녀가 되기를 원했던 여걸이다. 서태후는 만주 귀족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전란으로 인하여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많은 고생을 하였다. 그리하여 어릴 때부터 황궁에 들어가 부귀영화를 누릴 것을 고대하였다. 그러다가 17살에 수녀(궁녀)로 뽑히어 황궁에 들어갔고 후에는 제7대 함풍황제의 황귀비로 되었고 제8대 동치황제의 생모로 되었고 제9대 광서황제의 이모로 되었던 것이다. 제7대 함풍황제는 아들이 하나밖에 없었는데, 바로 서태후와 낳은 아들이었습니다. 함풍황제가 죽은후 서태후가 낳은 6살난 아들이 황제로 되면서 서태후는 황비에서 황태후로 되었다. 그리하여 28세부터 수렴청정하기 시작하였는데, 중국을 통치한 시간이 거의 48년이나 된다. 서태후의 이름은 나라씨였는데 ..

자료방 2013.11.14

淸 환관의 비밀고백…서태후는 대머리였다

환관 또는 내시라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들은 거세·권모술수·당쟁 등등이 아닐까.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이처럼 그려지는 조선시대의 환관들을 많이 접했다. 왕이나 왕비 옆에 착 달라붙어서 어명을 받들고 수행하는 그들은 비록 천한 신분이지만 때론 역사의 흐름을 바꿀 만큼 엄청난 권력을 휘두르기도 했다.중국 황실 역사에서도 환관의 역할은 지대했다. 책에 나오는 환관들의 스토리는 20세기 초 중국이 공화정으로 바뀌기 직전 청나라 말기 서태후 때 이야기다.  23세의 늦은 나이에 환관이 됐던 저자가 광서제 28년(1902년) 서태후 섭정기에 사무 총괄처 태감(환관의 우두머리)이 된 후 융유태후와 단강태비까지 25년간 지켜본 청나라 황실 내부의 은밀한 기록이다. 저자가 밝히는 서태후의 비밀은 실로..

자료방 2013.11.14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

정조어진 1795년 정조가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위하여 수원으로 행차하던 그 8일 간의 여정과 준비과정 등을 낱낱이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를 드라마틱하게 복원한 프로였다. 자신의 행차를 행복한 축제 '행행'으로 명명한 정조의 행차는 33년 전 할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어야만 했던, 생부 사도세자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 사랑의 표현이기도 했다. 다른 의궤들과 달리 널리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를 바랐던 정조의 의중이 반영되어 인쇄본으로 제작된 여덟 권의 의궤 속의 그 세밀한 준비과정과 축제의 묘사는 3D로 충실히 복원되어 아름다운 영상과 교차되며 화면 전체를 압도한다. 정조의 의궤는 단순히 왕실의 의식을 기록하는 형식적인 문서가 아니라 축제를 함께 하며 나눔을 베풀고자 했던 백성을 향한 진솔..

자료방 2013.10.27